[지식인의 서고] 니콜 라피에르의 수많은 문제가 얽혀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 살아가는 법 제시

서울 한복판에 '광화문 광장'이 있다.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겠다는 이유로 기자회견도 가로막았던 공간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스노우보드 국제대회를 개최하는가 싶더니, 이제 스케이트장을 개설하고, 빛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백남준의 작품 '프랙탈 거북선(Fractal Turtleship)'이 설치되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의 만남이라니, 촌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광장은 원래 조용하다. 가끔 '소란'스러울 때도 있다. 지금처럼 '요란'스러운 건 정말이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걸까? 그것은 자유로운 광장의 모습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자들의 작품이다. 사실 광장은 그 누구도 지배할 수 없으며 지배해서도 안 되는 텅 빈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광장은 사이의 공간이자 중간 지대이며, 구획하는 선이 없는 유연한 공간이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결과나 목표, 성과, 효율성 등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자꾸만 광장에 뭔가 설치하려 하고, 무슨 행사를 하려는 모습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니콜 라피에르의 <다른 곳을 사유하자>(푸른숲, 2007)는 그러한 억압적 현실에서 어떠한 사유 방식이 해방적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통행, 이주, 이동, 이산, 혼합, 전환이라는 여섯 가지 주제에 어울리는 지식인들, 즉 게오르그 짐멜, 한나 아렌트,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호미 바바, 에드가 모랭 등을 호명함으로써 '정주하지 않는 지식인의 삶과 사유'를 펼쳐보인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모른다 해도 책을 읽는 데 큰 무리는 없다. 무엇보다 무겁고 딱딱하기보다는 시적인 표현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저자의 입장은 몽테뉴로부터 기인한다. 이미 결혼도 하고 나이도 충분히 먹은 마흔 여덟 무렵, 몽테뉴는 아내를 버리고 고달프면서도 위험한 여행길에 올랐다. '다른 공기를 마시는 희열'을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2년 동안 맘 내키는 대로 돌아다녔다.

그의 글은 '움직임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그 행보를 그릴 뿐."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이 책은 존재나 목적지가 아니라 행보 혹은 여정에 중심을 두는 사유 방식을 강조한다. 그야말로 '과정'에 대한 찬양이다. 어디에 도착했는가가 아니라, 문을 열고, 다리를 건너고, 국경을 넘는 순간을 주목해야 한다.

미로를 즐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로를 통과해서 빨리 출구를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로를 방황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로에 출구가 없다면?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영역이 서로 얽혀 있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시대가 그럴지 모른다. 결국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다.

시시포스(Sisyphus)의 반복에서 무의미를 발견할 게 아니라 매 순간 드러날 수밖에 없는 차이를 인식하는 게 필요하다. 일상은 반복된다. 그래도 쉬지 말고 움직이고, 떠나고, 유랑하고, 방황하라! 그 흔적들이 바로 새롭게 구성되는 당신의 삶이다. "그대 길을 내는 자여, 길은 없으나 걸어가면 만들어지리."



권경우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