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등 칡

"가장 아름다운 자연속의 색소폰" 이렇게 이야기 하면 식물을 좋아하는 이는 다 안다. '등칡'이다.

등칡이 색소폰 모양을 하고 꽃부리를 벌려 피어났을 때 보면 정말 무엇인가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은데 정말 그 나무가 꽃을 피우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소리는 나지 않지만, 분명 그 속에선 맑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겨있을 듯하고,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정작 자연을 향해 마음을 열고 있는 우리에 달렸을 터다.

세상엔 참 많은 소리가 존재한다. 바람이나 파도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부터 음악까지.

같은 사람이 쏟아내는 소리도 어떤 마음을 담아 내느냐에 따라 참으로 달라지는데, 왠지 요즈음엔 의도, 욕심, 모함, 왜곡 같은 것을 담은 소리들이 세상에 지천이어서 등칡의 꽃송이들이 내어 놓는 무언의 소리들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등칡은 쥐망울덩굴과의 덩굴성 나무이다. 같은 집안 식물인 쥐방울덩굴보다는 여러모로 크고 굵게 자라나니 '큰쥐방울', 열매가 길어서 '긴쥐방울' 칡처럼 덩굴을 하며 올라가 '칡향' 등으로도 불리운다.

회갈색의 덩굴들인 주변의 나무들을 덮고 감아가며 커간다. 오래 세월이 묵으면서 이 줄기들은 코크가 만들어지듯 잘게 갈라져 줄기만으로도 세월을 담아낸다.

꽃은 봄이 한창일 때 핀다. 깊은 산에서 우연히든 의도하였든 꽃을 피워낸 등칡을 만난다면 무조건 행복해진다. 노란 꽃들이 달리는데 한 10cm정도 되는 통으로 된 긴 꽃이 U자형으로 굽어지고 다시 그 끝은 바깥을 향해 벌어져 트럼펫을 연상시키는데, 그 어떤 식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주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길고 굽어진 꽃은 바깥쪽은 연한 녹색과 흰색이 섞인 노란색이고 끝에서 갈라지는 꽃잎 끝은 노란색이 진하며 중간에 보이는 자주빛이 나는 갈색 점들은 포인트가 되어 곱다.

꽃이 없는 시기에 잎들도 보기엔 좋다. 손바닥보다도 훨씬 커다란 심장 모양의 잎들이 햇볕이 적절하면 무성하게 달리며 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길이가 한 뼘에서 좀 못 미치는 긴 원통형이어서 또한 특색 있다. 굽어졌던 꽃이 지고 어떤 중간 과정을 거쳐 이런 모양의 열매가 되는지 궁금할 만큼 크게 변신한다.

쓰임새를 생각해 보면 비교적 귀한 식물인 때문에 이용이 활발하진 않지만 정원의 파골라에 올리는 덩굴식물로 활용하면 좋을 듯하다. 꽃도 잎도 열매도 나무랄 것이 없다. 서양에선 우리나라 등칡과 유사한 식물들을 이미 조경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건조하고 직사광선으로 뜨거운 곳에서는 적절하지 않다.

한방에서는 약으로 쓴다. 주로 줄기를 관목통(關木通)이라는 생약명으로 쓰는데 심장을 튼튼히 하는 효과와 이뇨작용을 비롯한 소변과 요로관련 증상에 처방한다는 기록이 있다.

등칡은 "우리 땅에는 이렇게 특별한 식물도 자라고 있어요"하고 자랑하고 싶을 만큼 새롭고도 개성이 넘친다.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면서도 저항감이 전혀 없는 개성을 우리도 좀 배웠으면 싶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