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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지독한 청춘과 시대의 비명

■ 최승자 시인의 <쓸쓸해서 머나먼>
11년만에 시집 발표, 염세와 절망 대신 사유와 관조 담아
중견시인 최승자 씨가 신작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냈다. 99년 <연인들> 이후 11년 만에 발표한 시집에서 그녀는 80년대를 풍미했던 격렬한 염세와 절망 대신, 정적인 사유와 관조를 담았다. 그녀의 시집을 후배시인 진은영 씨가 읽었다. - 편집자 주

첫 시집의 어느 시에다 나는 이렇게 썼다. "그늘에 자라는 붉은 잎의 사실성을 믿는 그런 사람에 대한 부러움/혹은 몇몇 시인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다" 그렇게 슬쩍 고백한 다음엔 좀 대담해졌다. 두 번째 시집을 내면서 나는 '시인의 말'에다 특별히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인이 누구인지 써버렸다. '우리들의 시인 최승자에게'라고 말이다.

그녀의 시집은 세상의 모든 청춘을 위한 매뉴얼 같았다. 나, 아니 우리는 그녀의 시집을 읽으며 스물다섯 살에는 반드시 '무한을 향해 스스로 열리는 꽃봉오리처럼' 첫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온다는 것도 예습했다.

다르게 기도하는 법,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으로 바스러지며 사랑하는 법, 매독같이 쳐들어오는 가을을 맞이하는 법… 그녀의 시집에는 세상의 더러운 얼룩같던 우리가, 아무의 제자도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을 만큼 건방지고 가파르던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드디어 서른 살이 되었을 때 나는 마흔 살에 관한 그녀의 시를 읽었다. 아아, 40대는 그렇게 오는 거로구나. 그리고 그 다음의 세월은? 11년간 그녀가 시집을 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마흔 살 이후를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한담? 그녀가 번역한 <굶기의 예술>을 펼쳐 카프카가 마흔두 살에 후두 결핵으로 죽었다는 구절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마흔 살 이후의 일상, 마흔 살 이후의 문학적 삶에 대해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딴 청만 피웠다. 너 알아서 사시라는 듯. 물론 살다보면 마흔 살을 훌쩍 넘긴 멋진 인생선배들을 만나기도 하는 법이다. 그들을 따라 살아가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아쉬웠다.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인생이란 도대체 누구의 롤모델이 되기에는 적당치 않았다. 그녀는 커다란 성공을 거둔 예술가가 아니다. 그녀에게는 건실한 남편도 영리한 아이도 없다. 변변한 직업도 재산도 집도 없다. 그 흔한 문학상 한 번 못 탔다. 그녀는 건강하지도 않다.

그런 그녀일 뿐인데 사람들이 그녀의 시에서 자꾸 인생 매뉴얼을 엿보려 한다. 혼자 사는 외롭고 독한 여자들뿐만이 아니다. 아이와 남편이 있는 행복한 여자들도, 직업 있고 재산도 있는 남자들도 그런다. 누구든, 누구와 함께든, 무엇을 얼마나 가졌든 삶에는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를 들어보라. 이 시집은 간결하다 못해 시쓰기가 좀 귀찮아진 사람의 시쓰기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이전의 시집들에서 우리의 감각을 찌르고 내내 울리고 웃기던 그녀가 고요해졌다. 동네 아이들처럼 그녀를 쫓아다니며 우리가 줏어먹던 그 지독한 청춘, 지독한 시대에 대한 비명이 사라졌다.

우리가 작은 새처럼 쪼며 배를 채우던 그녀의 지독한 사랑, 그 지독한 위악도 사라졌다. 예전에 허공을 노래했듯 공허를 노래하지만 비명이 없다. "호젓이 고즈넉이/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먼 방, 빈 방"('먼 방, 빈 방')이라고 "이상하게 허밍으로 부르고 있다"('하루 종일 매달리다')

자신의 비명이 잦아들어 조용해진 곳에서 시인은 가만히 흔들리며 듣는다. "모든 사물들이 저마다 소리를 낸다/그러한 모든 것들을/내 그림자가 가만히 엿듣고 있다/내 그림자가 그러는 것을/나 또한 가만히 엿보고 있다"('가만히 흔들리며') 그런데 시인이 가만히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일이 지루하지 않다.

항상 죽을 것 같이 슬펐고 그래서 막상 죽는 일이 별것 아닐 것 같던 그녀도 피고 지는 일에 지쳤나? "아예는, 다른, 다른, 다, 다른,/꽃밭이 아닌 어떤 풀밭으로/이사 가고 싶다"('내 詩는 지금 이사 가고 있는 중') 그렇지만 그 소망의 피력이 실망스럽지 않다. 그것은 피로에서 나온 것도 도통(道通)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스무 살에, 서른 살에 꿈을 꾸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마흔 살에도, 그 이후에도 "꿈자리는 늘 슬픔뿐"인 것을 시인이 알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턱에서 문턱으로/경계에서 경계로"('von schwelle zu schwelle') 나아가며 서성거리는 것이 청춘뿐이겠는가. 영원히 서성거리고 흔들리는 이 세월 속을 시인의 중얼거림처럼 "흐르되, 흘러서" 가다보면 문득 쉬벨레, 문턱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독일어 단어가 이쁘게 느껴질 것이다. "하염없이 흔들리는 게 이뻐서" 살아있는 것들을 만지며 그녀는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이쁘다'는 '기쁘다'의 다른 이름이었다"('더더욱 못쓰겠다고 하기 전에')고 쓴다.

그렇지만 기쁘다고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오늘은 파리에 비가 올지도 몰라/아픈 것은 아픈 것이지"('구석기시대의 구름장들')라고 덤덤하게 말할 용기가 생기게 되었을 뿐. 그런데 그 구절은 "비오는 날 난 파리에서 죽으리"라고 썼던 가난한 페루 시인의 시구를 떠올리게 한다.

"세사르 바예호가 죽었다, 그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모두들, 그는 아무에게 아무 짓도 안 하는데/그를 몽둥이로 거세게 때렸다. 거세게"(세사르 바예호, '하얀 돌 위에 검은 돌') 그러니까 파리에 비가 오는 오늘은 시인이 맞아죽는 날인 것이다. 언제나 '오늘'은 빗줄기에든 고통에든 사람들에게든 우리가 맞아 죽는 날. 덤덤하게 말하는 용기 안에는 시원한 도통 말고 서늘하고도 뜨거운 다른 것이 내밀하게 존재한다.

마흔 살 이후까지 살아남을 젊은이들이여, 세상의 모든 중늙은이들이여, 고요히 귀 기울여 보라. 우리가 "닫아버렸던 고통의 門을 누가 다시 열어"('깊고 고요하다') 놓는 소리를. 우리는 매번, 항상, 죽을 때까지 맞아야 하고 또 들어야만 한다. 그 한 줄의 매뉴얼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세월을 우스워할 수 있으리라. "참 우습다/내가 57세라니/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참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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