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 방한한 클레어 킬로이스토리텔링 강한 문화적 배경에 예술가 면세제도로 경제적 뒷받침

클레어 킬로이 서울대 강연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킬로이가 '제 16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클레어 킬로이는 예술과 집념에 관한 3부작 소설을 집필한 젊은 작가.

데뷔작인 는 훔친 명화에 대한 스릴러 소설로 2004년 아일랜드 문학에 수여하는 Roony Prize를 받았다. 이어 바이올리니스트와 명품 바이올린의 사랑이야기를 쓴 , 1980년대 더블린을 배경으로 아일랜드 작가와 작가 지망생에 관한 소설 를 발간했다.

지난 27일 서울대에서 진행된 '아일랜드 문학전통과 아일랜드 현대소설' 강연에서 클레어 킬로이는 아일랜드 문학의 전통과 현재 경향에 대해 소개했다.

조이스와 베케트를 잇는 작가는?

작가는 "문학은 아일랜드 국가 자존심의 근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주지하다시피 아일랜드는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해 사무엘 베케트, 윌리엄 예이츠, 조지 버나드 쇼, 셰이머스 히니 등 걸출한 작가를 배출한 국가. 2000년대 아일랜드 문학계 역시 이들 작가의 계보를 이으며 영미 문학의 한 축을 이룬다.

존 반빌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로 2005년 부커상을 수상한 은 베케트의 계보를 잇는 대표 작가. 1945년 생으로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는 <증거의 책>(1989), <유령들>(1993), <아테나>(1995) 등 작품으로 영미문학권에 알려져 있다. 킬로이는 "인간이 처해진 조건을 향해 웃음과 슬픔이 공존하는 시각, 즉 '너무 슬퍼서 웃음을 준다'는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일랜드 농촌 출신 작가, 은 베케트, 조이스와는 사뭇 다른 전통을 보여준다. 킬로이는 "맥거헌의 <여자들 사이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처럼 아일랜드 가정에 한 권 씩 비치될 정도"라고 소개했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IRA의 중령과 그의 네 딸, 방탕아 아들 사이의 가족 내 역학 관계를 묘사한 작품. 맥거헌은 1965년 아일랜드에서 외설적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금지됐던 <암흑>을 출간하며 교사직을 내놓기도 했다.

아일랜드 향토적 전통을 바탕으로 작품을 쓴 작가 역시 프로테스탄트 아일랜드인을 주제로 삼은 점에서 베케트의 계보에서 소개됐다. 2005년에 출간된 <머나먼 길>은 1차 대전의 참호를 무대로 영국 육군과 함께 독일군에 대항해 싸우다 같은 아일랜드 인으로부터 배신자로 간주되는 아일랜드 병사 이야기를 다룬 소설. 그는 최근작 <비밀성서>에서 혼외자를 임신한 죄를 저질러 정신병원에 수용된 서아일랜드 출신의 100세 노파의 이야기를 다뤘다.

와 베케트의 계보를 잇는다면 동년배인 은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를 잇는다. 그는 1950년대 미국으로 이민 갔지만 가족에게 비극적 사건이 벌어지며 아일랜드 고향으로 되돌아온 젊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브룩클린>으로 알려져있다.

킬로이는 "이 작품에서 보이는 절제미와 섬세한 균형미는 제임스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의 문체를 두고 스스로 평하며 사용한 표현처럼 '철저한 평형감'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쓴 <밤의 이야기>(1997), 에이즈로 인한 죽음을 다룬 <블랙워터 등대선>, 미국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삶을 다룬 <대가>등을 발표했다.

존 맥거헌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조지프 오닐은 학창시절 사무엘 베케트에게 자신이 몸담은 크리켓 팀의 후원자가 되어달라는 편지를 쓰기도 하고, 실제 베케트가 후원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킬로이는 "그는 처럼 인간의 상실감을 이겨내려는 부드럽고 따뜻한 작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운율의 글을 쓰는 작가"라고 소개했다. 오닐은 최신작 <네덜란드>를 통해 9.11테러 이후 홀로 남겨진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밖에 아일랜드의 이민과 망명에 대한 소설을 발표한 조지프 오코너, 유머러스한 문체로 노동자 계층을 다룬 로디 도일, 아일랜드 여성을 다룬 에드나 오브라이언과 앤 엔라이트 등아일랜드 작가들이 활동 중이다.

세계적 작가가 탄생한 비결

인구 450만 명의 작은 국가에서 세계적인 문학이 탄생한 비결은 뭘까? 작가는 "스토리텔링이 강한 문화적 전통과 작가로서 삶이 가능하다는 경제적 배경"이라고 말했다. 아일랜드는 일상생활에서도 이야기를 잘하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적 환경 때문에 사건을 재미있고 생생하게 전달하는 서사방식이 아일랜드 문학의 특징을 이룬다는 것. 서사가 강한 아일랜드 소설은 세계문학계에서 통용될 수 있었다.

'작가로서' 경제적 생활이 가능한 것도 아일랜드에 수많은 작가 탄생한 비결이다. 일례로 아일랜드 정부는 1969년부터 아일랜드 공화국 수립에 예술가들이 끼친 공헌을 인정하는 뜻에서 작가, 작곡가, 화가, 조각가들의 예술문화 작품 판매로 얻어지는 수익에 대해 세금 면제 혜택을 부여하는 '예술가 면세제도'를 도입했다.

서배스천 배리
2008년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으며 조세위원회에서 예술가 면세제도 철폐를 권고했지만, 이때 경제 실무가들이 예술계 예산 삭감과 예술가 면세제도 폐지에 반대하고 나섰다. 유럽 다른 나라들과 아일랜드의 차별점이 문화산업에 있다는 것. 예술가 면세제도는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작가는 "아일랜드에서는 문학이 경제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일례로 국가나 기업 간 경제교류에서 아일랜드 문학작품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일랜드가 아이디어와 비전으로 뭉친 사람들이 살아가는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국가라는 걸 설명하기 충분하다"고 말했다.

클레어 킬로이 인터뷰

- 아일랜드와 한국은 공통점이 많다. 변방의 작은 국가, 부족한 천연자원. 식민지 경험 등. 그럼에도 아일랜드 문학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 아일랜드 문학이 왜 세계 시장에서 성공했을까?

"아일랜드는 역사적으로 가난한 국가다. 따라서 문화 창작활동이 제한돼있다. 클래식 음악, 미술은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글 쓰는 데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또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책을 출판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모델을 옆에서 보고 있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건) 실현가능한 길이란 생각이 들어서 작가들이 창작에 집중하게 된다."

- 아일랜드 문학의 대다수는 영어로 쓰인다. 작가들이 아이랜드어가 아닌 영어로 집필하는 이유가 뭔가? 아일랜드어로 집필되는 작품이 있다면, 문학계에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콤 토이빈
"실제 생활에서 아일랜드어가 모국어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학교에서 아일랜드어를 가르치지만, 일상생활에서 아일랜드어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실에서 아일랜드어로 책을 읽는 독자층이 전무한 상황에서 소설을 창작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 자국의 문화를 전통언어(아일랜드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한계가 있지 않나?

"아일랜드어가 완전히 죽은 언어는 아니다. 시는 아일랜드어로 창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영어로 번역될 때가 있다. 때문에 소멸되거나 완전히 잊혀진 언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일랜드 작가가 영어로 창작할 때도 아일랜드어에 대한 감각이 스며든다고 생각한다."

-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전쟁, 일제 식민지 경험과 거리가 멀다. 작품 역시 개인적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 주를 이룬다. 아일랜드 젊은 작가들은 아일랜드의 역사를 어떻게 다루고 있나?

"한국과 비슷하다. 전쟁과 역사보다 개인의 경험, 주변 이야기가 많다. 이는 정부 개입이나 작가 개인의 경향과는 무관한데, 아일랜드 소설 대부분은 영국에서 출판된다. 따라서 집필 때 영국 독자를 염두해야 한다. 상업화된 현실에서 집필해야한다는 점에서 한국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