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작가 김선우두번째 장편 출간, 캐나다 소녀와 한국젊은이의 시선 그려

김선우 만큼 일반에 알려진 시인이 또 있을까. 저 도저한 80년대, 시의 시대를 지나 90년대 중반 등장한 그녀는 한국 시단에 떨어진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문학평론가 이광호의 말처럼, 그녀는 '한국 여성시가 발견한 또 다른 사랑의 이름'이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2000), <도화 아래 잠들다>(2003),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2007) 세 권의 시집을 관통하는 말은 관능과 여성.

이광호 평론가는 "그녀의 시에서 여성의 몸이 가지는 비밀의 공간은 생명 전체를 둘러싼 향연의 자리가 된다"고 평했는데, 이 말은 김선우의 시가 천착하는 '여성적 몸의 구체성', 그 안에서 관능과 서정이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시인은 여성적 몸의 상상력으로 고통의 현실을 치유하는 사랑의 능력을 발견한다. 생태학적 상상력이 구축한 하나의 우주가, 간절하게 2인칭 '당신'의 세계와 결합하는 사랑의 언어를 만들어 낸다. 때문에 그녀의 시 앞에 붙은 수사는 '에코-페미니즘'.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퉁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만 먼저 바닥에 닿겠습니다/ 가장 낮게 엎드린 치마를 끌고/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그대보다 먼저 바닥에 닿아/ 강보에 아기를 받듯 온몸으로 나를 받겠습니다' (시집 <내 몸속에 잠든이 누구신가>, '낙화, 첫사랑' 전문)

그녀의 시가, 여성 지식인의 우아한 성정으로 들리는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칼럼을 읽으면 그녀의 또 다른 세계가 보인다. 대학시절 문예운동 동아리에서 활동한 시인은 예전 한 인터뷰에서 "그때는 두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거리에서 쓴 가두시, 하나는 조용히 내면으로 침잠하는 시"라고 말한 적 있다. 이 두 세계가 여전히 그녀의 작품 안에 공존하는데, 산문과 칼럼에서 전자의 색깔이 더 깊게 배어있다. 몇 해 전 모 일간지에 산문을 연재할 무렵 한 선배 소설가가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실지 모르겠는데 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을 쓴 조세희라고 하는데요."

작가는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했고 이후 만남에서 그녀에게 소설을 써보라고 제안했다. 이 사람이 소설을 쓰면 뭔가 나올 것 같아서라고. 그녀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된 연유다. 불편한 몸에도 조세희 선생은 그녀가 첫 소설 <나는 춤이다>를 냈을 때 추천사를 써주었다.

"시와 소설 작업은 굉장히 달라요. 달라서 매력이 있기도 하고요. 저는 본질적으로 기질 자체가 시인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설 쓰기의 매력도 시 쓰기에 못지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시만으로 부족함을 느끼는 어떤 지점, 그러니까 사회 역사적 관계성의 문제나 공동체적 이상과 개인 간의 관계 탐구의 문제 등을 소설로 부딪혀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촛불이 그려낸 꽃

시와 소설 쓰기를 '극과 극의 두 몸'에 비유했지만,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그려낸 <나는 춤이다>를 비롯해 두 번째 장편 <캔들 플라워>까지 그녀가 쓰는 소설은 시의 연장선에서 시작된다. 이를테면 '모성성'과 '생명 에너지'를 그린다는 것. 지난 주 출간한 <캔들 플라워>는 2008년 촛불시위를 주제로 캐나다 소녀 지오와 한국의 젊은이들의 시선을 그린 작품이다. 집필 배경에 대해 작가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 작가로서 느낀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새로운 종류의 혁명 감각, 새로운 생명이 태동이었다"고 말했다.

"출발은 '광우병 소 먹기 싫어'였지만,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그 구호가 시민적 요구로 확장됐을 때 '어떻게 생명이 상호 공존, 공생할 수 있을까' 고민으로 수렴됐던 같아요. 2008년 촛불이 우리에게 주었던 가장 미래지향적인 메시지이자 제가 추구했던 모성의 어떤 측면과 긴밀하게 연결되죠. 제가 갖고 있는 문학적 고민이 '생명이 평등하고 평화로운 형태로 상생하는 방법'이거든요."

캐나다 깊은 오지마을에 사는 지오는 '자연의 감각'을 가진 아이다. 학교에 다니지 않지만 십여 개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특이한 다문화 소녀. 열다섯 살 생일을 맞아 한국에 오게 된 그녀는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직장인 희영,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 강남녀 수아와 떠돌이 개 사과와 함께 서울을 탐험한다. 2008년 5월 촛불 집회에 나온 이들은, 소를 데리고 광화문 한복판에 나타난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전형적인 정치소설. 그러나 작가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다기 보다 함께 고민하며 수다 떨고 싶었던 소설"이라고 말했다. 촛불정국을 다루지만, 사회고발이 작품의 중심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오를 둘러싼 캐릭터들은 작가의 이런 고민을 드러낸다. 지오의 할머니인 프랑스인 마리는 동백림 사건으로 한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윤이상 구명 집회에서 한국인 '김'을 만나 지오의 어머니 하린을 낳았다. 하린 역시 한국인 남자를 만나 지오를 낳고, 동성애인 조안 아줌마와 함께 산다. 할머니-어머니-지오로 이어지는 가계도는 마치 영화 '안토니라스 라인'처럼 모계중심의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동물과 교감을 나눈다는 점에서 역시 그녀의 시 세계를 관통하는 '에코-페미니즘'의 면모를 읽을 수 있다. 자연과 일체화된 삶은 사는 지오는 물론, 희영은 자신이 손수 만든 '코코돌코나기펭'이란 행운의 주문을 외고 다니는데 이 주문은 코끼리, 코알라, 돌고래, 코뿔소, 나무늘보, 기린, 펭귄의 첫 글자를 조합한 것이다. 연우와 희영이 자매처럼 가까워진 것도 심장사상충 때문에 죽어가는 개 '사과'를 살리기 위해 의기투합하면서 부터다.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교감은 광우병 사태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

"등장인물 모두가 저마다 중심인 다양한 구심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파악하는 2008년 촛불의 근원적인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촛불은 하나의 중심을 향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기보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나씩의 중심을 만들면서 다양한 색깔을 낸 아주 컬러풀한 시위였지요. 촛불 시위가 창조한 새로운 미학성이기도 하다고요."

제목인 '캔들 플라워'는 촛불 시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집약적으로 드러낸다. 촛불이 피어나는 꽃과 같다는 의미의 이 말은 시위에 참여한 평범한 이들을 일컫는 말. "2008년 촛불 시위가 너무 빨리 '한여름밤의 꿈'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고 싶었다"는 작가는 아름다운 경험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캔들 플라워! 꽃 피기 직전에 체온이 올라가는 꽃들처럼 촛불을 든 사람들이 따뜻했다' (<캔들 플라워> 본문 중에서)

"문학이란 어떤 슬픔과 비루함 속에서도 끝내 존재해야 할 '아름다움에의 의지'라고 느낍니다. 우리 삶에 정말로 소중한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시키는 데 문학이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