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가 전경린신간 사랑 통해 과거 벗어나 현재 회복하는 여성 그려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소설가 전경린에게 붙은 수사 중 하나는 그녀의 작품, 정확하게 소설의 소재를 관통하는 말이다. 여성과 사랑, 상처는 그녀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구심점인데, 작가는 이 닳고 닳은 재료를 자신만의 시선으로 담아내며 '이것이 영원한 인간의 화두' 라고 말한다. 작가 전경린만의 프리즘이란 이를테면 강렬한 이미지와 화려한 문장, 집요한 내면의 관찰 같은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한 '작품'으로 끌어올린다. 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소감에 작가는 "나의 작품 세계는 문학성과 통속성의 아슬아슬한 사잇길을 걸어왔다"고 적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내 생애 꼭 하루뿐인 특별한 날>부터 <황진이>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생의 관습적인 고리를 끊기 위해 필사적으로 탈주를 감행한다. 일상에 내재된 욕망, 관습과 제도를 거부하는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작가는 섬뜩하게 포착해낸다.

이야기는 언제나 일탈과 도발, 죽음과 사랑으로 점철되지만, 작가 전경린이 말하는 사랑은 본질적으로 야생적인 것, 제도 바깥의 비결정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붙은 수식어는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작가는 "사랑 자체가 목적이었던 소설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사랑은 한 존재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겪고 지나감으로써 일어나는 자기 변화, 쇄신을 들려주려고 하는데…. 거미가 자기가 뽑아낸 거미줄을 타고 들판을 이동해가는 데, 사랑은 그런 쇄신, 이동의 의미로 쓰이는 거죠."

'새로운 여성성의 발견'이라 불리던 작가는 전작 <엄마의 집> 발표 이후 새로운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작가는 "(이전까지)내가 내 세계를 위해서 저항적으로 살았다면, 지금 내가 하는 저항은 이 세계를 사랑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습작을 할 때 '여성의 진실을 말해보고 싶다' 그런 욕망이 굉장히 강했거든요. 여자로서 코 앞에 있는 벽을 어쨌든 밀어내는 심정이었어요. 예전에는 현실에 그대로 편승해서 사는 사람이나 심지어 이용하는 사람들, 감정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이 굉장히 컸지만 어느 시점에서 그 사람들도 휘어진 채로 살기 위해서 애쓰는 존재라는 그런 관대함이 생긴 것 같아요."

풀 밭 위의 식사

신간 <풀 밭 위의 식사>는 작가의 걸어온 자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의 주된 이야기는 사랑이지만, 작가의 말처럼 이 사랑은 "존재가 쇄신하는 수단으로서의" 장치다. 소설 속의 사랑은 이제 세상과 대결하거나 화해를 요구하지 않는다. 작품의 말미에 쓰인 세 노르말 (C'est Normal)처럼. 프랑스 어인 이 말은 직역하면 '원래 그런거야'란 뜻이지만, 정치, 사회적인 상황에서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남자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유리공예가 누경에게 헌신적이고 자상한 남자 기현이 다가온다. 안정적이고 무난한 기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누경에게 상처가 있었으니 먼 친척 오빠 서강주와의 사랑이다. 서강주는 누경의 어린 시절 그녀의 집에 머물렀으며 그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강주가 결혼하자 16살의 누경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 들판을 찾았고, 낯선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끔찍한 과거를 봉인한 채 평범하게 살아가던 누경은 30대 중반이 된 후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등록하며 다시 강주를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니까, 서강주와의 로맨스는 그녀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대면하는 지점이자 상처가 치유되는 지점인 셈. 위태롭고 애틋한 사랑은 서강주의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으며 이별을 맞고 누경은 기현의 지인, 인서를 만나게 된다. 누경은 그에게 편지를 쓴다.

'이다음에, 우리 모두 많이 친해진 어느 맑은 날, 숲속 빈터의 풀밭으로 소풍가요.'(245페이지)

지독한 사랑이야기 같은 이 소설의 의미를 곱씹으려면 "소설의 표면 밑에 작가가 만들어 둔 지도"를 살펴봐야 한다. 작가의 지도는 책의 말미, 작가의 말에 실려 있다.

'완성된 소설을 다시 읽으니, 겹겹의 흐름 속에서 몇 개의 단어가 표식처럼 선명하다. 팔 없는 비너스, 깨어진 유리조각, 치마, 검은 콩과 매실, 들판의 꽃 핀 나무 같은 것…… 풀밭 위의 식사가 의미하는, 상처를 간직한 역설적인 평온과 태연을 그 여자에게 전해주고 싶다.'(248-249페이지, 작가의 말)

누경에게 들판은 무엇인가. 서강주를 잊기 위해 찾았던, 그리고 다시 로맨스가 시작되는, 그래서 '우리 많이 친해진 날, 소풍 가자'고 말하는 그곳은 고통의 공간인 동시에 상처를 끌어안고 일어나는 공간이다. 알몸을 훤히 드러내고 정면을 응시하면서, 자신의 상처를 일상으로 내는 마네 그림 속 그녀의 풀밭처럼.

"카프카의 <변신> 맨 뒤를 보면 벌레로 죽은 주인공이 죽은 후 가족들이 한가롭게 소풍을 가죠. 소풍은 일상에서 보내는 최고의 시간이고, 들판은 그 여유를 보여주는 공간이죠. 누경에게 들판은 상처 입은 곳이기도 하지만, '소풍가면서' 화해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 생각을 하고 나서 마네 <풀밭 위의 식사> 다시 보고 제목을 정했죠."

작품의 모티프는 라디오 다큐멘터리. 전씨는 지방 방송국 후배가 성폭력 피해 여성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대본을 봐주다가 여성으로 경험가게 되는 폭력과 그로 인한 외상 후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다. 어린 시절 기억으로 연애를 하지 못하는 주인공 누경을 능동으로 행동할 수 없는 '팔 없는 비너스'로 비유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이 팔 없는 비너스가 사랑을 통해 쇄신하면서 들판으로 나아간다. 사랑을 통해 자기 과거에 눌려있는 생애에서 벗어나 현재를 회복하는 자아, 작가가 숨겨둔 '작품 속 지도'란 이런 모양이 아닐까.

'생각하면 과거의 짐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독립해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초월적인지, 현재야말로 매순간 얼마나 눈부신 기회인지…… 평정을 유지하며 현재성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야말로 소박한 초인이 아닐까.'(249페이지, 작가의 말)

"폭력적인 상처의 내면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는 다시 장편을 쓸 계획이다. 그 작품 또한 맵고 짜고 쓰고 비린 사랑, 인간 내면의 또 다른 변주일 터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