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에르네스트 만델의 역사유물론 범죄소설 분석, 모든 사회 현상에 적용 가능함을 입증

"왜 범죄소설이라는 특정한 문학장르의 역사에 부르주아사회의 역사가 반영되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부르주아사회가 범죄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즐거운 살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우선 저자가 '만델'이라는 것. 그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트로츠키주의자로 유명하다. 특히 그의 <후기 자본주의>는 정치경제학의 고전으로 널리 손꼽힌다. 참고로 프레드릭 제임슨도 만델의 이론에 근거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분석했다. 시장자본주의-리얼리즘, 독점자본주의-모더니즘, 후기자본주의-포스트모더니즘, 그의 3단계 문화이론도 여기에 근거한다. 그러한 만델이 '범죄소설'을 분석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와 범죄소설의 짝패란 얼마나 기묘한가. 자신도 겸연쩍었는지, "마르크스주의자가 범죄소설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서문에 '변명'을 덧붙여 놓았다. "역사유물론은 모든 사회현상에 적용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변명이 아니다. 거의 선전포고처럼 들리며, 역사적 유물론이 얼마나 유효한 독법인지 강력하게 주장하고, 결국은 입증한다. 자그마치 1984년에 출간된 책에서 말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미학은 오랫동안 대중문화를 경시했다. 이것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도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도 같았다. 전자가 체제의 문제로 부정했다면, 후자는 의식의 문제로 비판했지만, 태도는 비슷했다. (이 공백은 나중에 영국의 문화연구와 알튀세의 이데올로기이론이 등장하고 나서야 겨우 메울 수 있었다) 그러니 기묘할 수밖에. 골동품으로 전락한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으로, 그 동안 무시했던 대중문화의 하위장르를, 정치경제학자가 천연덕스럽게 요리하는 솜씨라니.

그는 우선 전근대 악당소설과 근대의 범죄소설을 칼로 자르며, 저옛날 '고귀한 악당을 사악한 범죄자로 변모시킨 이유'로 자본주의체제를 지목한다. "사유재산에 반대하는 반역이 개인화되는 것이다. 반역자는 이제 그 사회적 의미를 잃은 채 도둑이나 살인자가 되는 것이다." 새세상을 꿈꾸던 홍길동이 사유재산을 강탈하는 신창원으로 '전락'하는 순간. 범죄소설은 이런 식으로 범죄를 재현하고 단죄하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보전하는 것이다.

그 방식은 당연히 시대에 따라 범죄소설 형식에 반영됐다. 초기자본주의 시절 오귀스트 뒤팽은 접실에 앉아 신문을 뒤적이며 소소한 사건을 추적했지만, 1차 세계대전을 거친 후에 샘 스페이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제는 무엇보다 부유층이 저지르는 사회 부패가 그 잔혹성과 더불어 플롯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부르주아적 가치 내에서 변화가 발생했고, 조직적인 갱이 등장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해결사가 처리할 대상은 부패만이 아니었다. 조직폭력이 활개할 때는 갱단에 침투해야 했고, 냉전시대에는 적지에 뛰어드는 첩보원이 되어야 했다. 범죄소설이 단순히 지배이데올로기만 뿌리는 것은 아니었다. 여느 예술이 그랬듯 성숙한 시기에 이르러, 사회자체를 비판적으로 응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범죄를 갈수록 더욱 더 많이 저지를수록, 그 정의상 아주 순응적인 우리 시민들 역시 더욱 더 많은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대부> 해설집) 대부는 온화한 보호자며 자애로운 자선가에 모범적인 시민이자 충실한 가장이 아니던가. 그렇게 해서 '사회적 범죄'는 '범죄적 사회'와 별 다를 게 없어지고, 흉악한 범죄자를 갈음해 사악한 시민이 탄생하고야 만다.



김상우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