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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시대' 주거 변천사 집대성

[책과 작가] 박용환 교수의 <한국근대주거론>
1878년~1960년대 기록… 한옥의 마당 내실화 전통 단절 우려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는 집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이 사회와 문화, 역사의 총체임을 의미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과 건축의 양식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다. 네덜란드 구조주의 건축의 대가로 불리는 헤르만 헤르츠버거. 그가 건축에 대해 정의한 바도 이와 다르지 않다.

"건축은 특별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영위하는 생활 속 일상사에 관여할 따름이다"라는 말이나 "건축에 사회적 기능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질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회와 무관한 해결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개입은 건축가의 구체적인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적 함의를 가진다"라는 말은 건축의 태생 자체가 사람에 맞춰져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새해의 시작과 함께 출판된 <한국근대주거론>(박용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 기문당)은 이처럼 생활과 떨어질 수 없는 공간으로서의 건축, 특히 집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저자가 제목을 '주거론'이라 적은 이유도 생활과 공간의 대응관계를 주요 관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빽빽하게 쓰여진 글씨로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책에 저자가 담아낸 시기는 한국의 격동의 시기이자 가리워진 시기인 근대. 최근 근대주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주거론의 관점에서는 일관된 관점으로 종합적으로 정리되지 못하고 공백상태로 남겨져 있었던 부분"(김수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위원)이라는 점에서 건축계에서도 "개인의 학문적 탐구의 결실일 뿐 아니라 우리 학계에도 길이 남을 큰 수확"(김진균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이라는 반응이다.

<한국근대주거론>에서 저자는 근대의 시기를 1876년과 1960년대 사이로 보고 있다. 조선의 문호 개방의 직접적 계기인,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체결 시점부터 경제개발 계획이 한창일 때까지다. 그 사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은 시대는 그만큼 변화도, 잃어버린 것도 많다. 각종 문헌자료도 역시 같은 처지다. 저자는 '미지의 시대'일 수밖에 없는 근대주거의 관련 자료를 구하기가 녹록치 않았음을 토로하며 "근대기를 바라보는 단절론 적인 입장은 이러한 연구의 미진과 관련이 깊을지도 모른다"는 자성의 자세로 근대 도시 주거의 변천과정을 집대성해냈다.

서장에서 저자는 왕조가 몰락하는 조선 말기를 사회, 문화, 경제 등 다각적인 시선으로 훑어낸다. 한 시대의 종말과 이질적인 문화의 등장은 생활 전반의 커다란 변화를 동반한다. 이어지는 7개의 장에서 이러한 변화를 낱낱이 풀어낸다. 외래 주거 건축의 유입부터 일식 주택이 전통주거에 미친 영향, 한국인 건축가의 활동, 광복 이후 공영주택, 아파트라는 새로운 도시주거 유형의 등장, 생활실태조사를 통한 전통가옥과 일식주택 등의 증·개축에 이른다. 집필 과정만큼이나 읽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하지만 건축 안에만 묻히지 않고 역사 속에서 조망하고 있어 주거 공간이 왜 삶을 담는 그릇인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근대 사상의 유입과 한국인의 생활과 공간을 변화의 인과관계를 추적하는 부분은 특히 흥미롭다. 조선후기 개항을 전후로 부를 축적한 중인계층과 일부 상류계층을 중심으로 도시 주거 문화는 빠르게 변화하게 되는데, 당시의 개화의식은 위생과 도시정비에 대한 의식을 깨우치는 계기로 작용한다. 1896년 10월 20일자 독립신문 단신에는 조선의 수도, 한성부의 사정이 이같이 전해진다.

(상략) 백성들이 자기 집에 건축을 하려고 길 가운데 흙을 파서 높고 깊은 데가 없게 하고 집집마다 처마 밖에 채양과 좌판을 길에 범함을 엄금하고 길가 집 창 밖에 더러운 물건과 오줌과 물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어른과 아이가 길가에서 대소변을 보지 못하게 하고 죽은 짐승을 빈 땅에 묻거나 길가에 버리지 못하게 하고.. 이 외에 모든 조건을 어기고 범한 인민을 순검이 보는 데로 잡을 것이니..

1920년대에는 생활개선운동이 한창이었다. 살림살이 향상, 생활의 진보를 목적으로 엘리트 계층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대중들에게 확산됐다. 물질과 정신을 광범위하게 겨냥한 이것은 가옥의 개량, 부엌의 개량, 의복의 개량은 물론 가족관계와 부녀자의 역할과 책임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에 침투했다. 사회를 지배하는 사상이 결국 실생활까지 깊숙이 파고 들어감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실례다.

기존의 <주거론>과 달리 우리의 주거 양식을 담아낸 <한국근대주거론>이 갖는 또 하나의 유의미한 가치가 있다. 저자가 지난 30여 년간의 필드워크(field work)를 통해 생생한 현장을 길어 올렸다는 점이다. 동경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학생들은 물론 일본의 건축학자들과도 다년간 한국 주거 공간의 실태조사를 해왔다.

전국의 주요 한옥은 물론 알려지지 않은 한옥마을-전남의 석성마을, 방촌마을, 강골마을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같이 수고로운 작업의 결과물이 일본에서는 출판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책으로 펴내자는 출판사가 없다. 훗날 우리의 전통 주거 양식까지도 일본 책을 참고해야 할지도 모를, 어이없는 현실이다.

저자의 전통 단절의 우려는 한옥의 '마당의 내실화'에서 증폭된다. 친환경 바람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희소성이 개입되면서 많은 이들이 한옥에 주목하는 요즘이다. 주거공간인 한옥의 적지 않은 공간이 상업공간으로 변모하고 현대사회에 걸맞게 개조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옥의 특징 중 하나인 '마당'이 거실로 개조되는 것은 비단 편의를 위한 선택으로만 바라보기엔 무리가 있다.

사상과 공간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주거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비움'으로써 '채움'의 공간이 되는 '마당'의 내실화는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한옥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와 다름없는 공간은 허울뿐인 전통인 것. 집은 삶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 삶에 관여하기도 한다. 헤르만 헤르츠버거가 했던 지적, "사실상 건축가들은 설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지만 건축가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문구를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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