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김소진의 철거 전 동네 사람들 모습 생생 묘사… 삶에 대한 성찰 불러

동네 이름은 밝히지 않겠지만 강산이 바뀌기 한참 전에 철거촌에 가본 적이 있다.

한가롭게 구경간 것은 아니고 철거 깡패와 전투경찰이 연합 작전을 펼친다기에 미력이나마 힘이 되려고 가보았다. 언덕이었다. 언덕은 가팔랐고 여기저기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정오 무렵에 도착했는데 의외로 한가로웠다. 아저씨들은 소주잔을 들고 떠들거나 여기저기 누워서 주무셨고, 아주머니들은 삼삼오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주고받았으며,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새로 온 우리를 적으로 삼아 칼싸움을 하기 바빴다.

그렇게 한가로운 오후였다. 갑자기 장정들은 소주잔을 버리고 저마다 고함을 질러댔다. 아주머니들은 어딘가 모르지만 정해진 자리에 되돌아가 비닐 봉투를 들었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언덕 꼭빼기 자그마한 오두막에 사방에서 뛰어 도망갔다. 이윽고 동네 사람들이 맞고 쫓기는 아수라판이 되었다.

최신식으로 무장한 연합군을 똥폭탄(비닐에 재래식 변기에서 퍼 온 오물을 담아 만든 무기)으로 막아내기에는 당연히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나와 친구들은 공포와 연대의 시간을 보냈고, 지금 그 동네에는 아름답지 않은 아파트가 서 있다.

요절한 소설가 김소진의 <장석조네 사람들>은 그렇게 철거당하기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동네에서 살았는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내가 함께한 동네 사람들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어떤 삶을 함께 살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하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풍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리얼하다.

비루하고 충만하지도 않으며, 내일이 걱정되지만 오늘 일을 하기도 싫은, 그런 인생들의 파노라마가 이 소설의 테마이다. 엄마 성기를 본 아들, 그 아들한테 빌붙어 재미 보려는 군상들. 이들의 세상은 더럽고 축축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경계를 오가는 우리네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과연 얼마나 나아졌을까? 곳곳에 뉴타운이 들어섰지만 더럽고 축축한 세상은 깨끗하고 건조해졌을까? 아마 <장석조네 사람들>에 등장하는 동네를 철거하면서 없어지는 것은 우리의 염치이며 이성일 터이다. 만족을 모르는 동물이자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계산기가 되어버린 우리에게 이런 동네의 아름답지 않고 처절한 삶은 어색한 장면일 뿐이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예전 철거 깡패와 전경들은 기다려주기는 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결코 넉넉함은 아니었겠지만, 비루함과 비참함을 인내해주는 어리석음(?)은 있었다. 군사정권도 철거민을 용산처럼 쳐 죽이지는 않았던 셈이다.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이 소설을. 용산 이후에 이런 소설이 가능할까? 책을 말하기에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요즘인 것 같다.



김항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