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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쓴 시 3권에 나눠 낸 느낌"

■ 책과 작가 - 시인 이병률
세번째 시집<찬란>출간… 이별·방랑서 인생의 즐거움 노래
'사내의 시에는 언젠가는 당신을 떠나게 되리라는 예감이 있고, 그 예감을 스스로 불편해하는 불안이 있고, 그 불안이 당신에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라는 절박이 있고, 그 절박을 용서할 수 없어서 상처받는 당신을 위해 우는 갸륵이 있다.'

이병률의 두 번 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 쓴 평론가 신형철의 해설이다. 기실 많은 사람들이 이병률의 시를 관통하는 말로 이별을 꼽는다. 만남과 헤어짐, 그 슬픔의 성정을 드러내는 그의 시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을 자기만의 언어로 노래한다.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 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 (시 '화분' 중에서)

2006년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그가 쓴 연보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영화사 전전, 방송사 전전, 잡지사 전전, 출판사 전전, 기획사 전전, 음반사 전전, 아니 전력을 다해 세계를 전전.'

그는 서울예대를 졸업하고 한 라디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차에 통장을 털어 단편 영화를 제작했고, 프랑스 파리 영화학교에서 2년을 보냈다. 199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프랑스에 있는 바람에 청탁 한 번 받지 못한 무명의 시인. 그는 전력을 다해 세계를 전전했고, 그 기록을 모아 산문집 <끌림>을 냈다. 대중이 기억하는 이병률의 모습은 아마도 카메라를 목에 메고 시를 끄적이는 여행자의 모습일 터다. 시인과 시의 화자는 별개의 존재이지만, 사람들은 그의 산문집에 비추어 그의 시를 읽어내기도 한다. 그의 시를 관통하는 또 다른 키워드가 '여행'인 이유다.

'되돌아보면 그 바람을 받아먹고/ 내 나무에 가지에 피를 돌게 하여/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 년을 흘렀던 것이다/ 그 바람이 아직 아직 찬란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시 '바람의 사생활' 중에서)

그의 첫 시집에 해설을 쓴 최하림 시인은 철저히 혼자임을 자처하는 시 '옥탑방'과 세계를 떠도는 '장도열차'를 빌어 이병률의 시를 소개했다. 요컨대 최하림이 본 이병률의 시는 고독과 방랑인 셈. 이 시인은 대학 은사 최하림 시인을 "가나다라를 배울 때부터 나를 지켜보신 분"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옥탑방과 장도여행이 이병률 시의 두 축을 이루고 있으며 그 둘이 싸우고 화해하면서 친밀성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에 접근하여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해설 '장도열차를 타고' 중에서)

영혼의 두 극지 사이에 있는 사과나무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어떠한가. 시집 <찬란>의 시들은 처연하고 오롯하다. 시집을 읽은 허수경 시인은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보다 훨씬 난만한 곡선을 지닌 시들이 가득한 시집"이라고 적었다.

'여전히 불분명하고 그윽하고 일촉즉발의 순간들을 여미고 여며 아주 오랫동안 달인 듯하다. 그리고 이병률이다. 세계가 저토록 불분명하니 말이 더뎌지는 순간들을 수없이 경험한 시인이다.'(시집 <찬란> 해설 '영혼의 두 극지 사이에 있는 사과나무'중에서)

'매일 우주를 굴리고 있다고 믿은 햄스터가/ 실은 별만큼 먼 외로움을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니 터져버려/ 둥그렇게 쥐고 있는 손아귀의 외로움 따윈 또 무슨 소용인가'(시 '햄스터는 달린다')

이 세계는 섣불리 전복되지 않는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역시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집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이다. 시인은 "10년의 세계를 3권의 시집에 나누어 담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시인이 문득 '찬란'이란 말을 꺼냈겠다. 그는 "다음 시집을 낼 때쯤이면 달라져 있을 것"이란 말을 남겼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저 앉는 일은 더 찬란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시 '찬란' 중에서)

이번에 표제작을 '찬란'으로 고른 이유가 있었나요?

"외우기도 쉽고, 예전에는 그런 생각이 안 들었는데, 최근에는 봄이 너무 좋아요. 봄 좋아하세요?"

- 네. 전 2,3년 전부터 봄이 좋아졌는데.

"그거 나이 먹는 건데. 선배들께 '봄이 좋아지는 게 나이 먹는 거죠?' 물어보면 맞대요. 자기가 봄이면 구태여 봄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요. 예전에는 살아가면서 즐거움 같은 걸 잘 몰랐거든요. 첫 번째, 두 번째 시집을 냈을 시기에는 우울한 면이 있었는데 지난 연말에는 '사는 게 즐겁다'라는 말을 스스로 내뱉은 적이 있어요. 그런 것과 연관이 있겠죠."

- 이번 시집, 묶으면서 발표한 시 중에 뺀 것 있나요?

"시집으로 묶어야 할지, 말지 생각한 게 10편 정도 됐는데 재미있는 건 해설을 쓴 허수경 시인이 그 10편을 (해설에서) 거의 다 언급했어요. 언급한 시가 15편이라면 10편이 그런 시죠. 선배 시인이 읽은 시니까 독자들도 읽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고민하던 시는 다 실었어요. 허수경 시인이 해설을 출판사보다 저한테 먼저 보냈는데 그걸 보고 정리하기가 더 쉬웠어요."

- 시집 한 권을 받을 때마다, '이 시인의 한 세계가 넘어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번 시집 정리하면서 느낌이 어땠나요?

"글쎄. '다음 시집을 낼 때쯤이면 달라져 있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제까지 시에서 미학적인 면이나 제 이야기를 많이 했다면 이제는 편하게, 전달도 쉽게 할 수 있는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정리하면서 그런 생각을 했죠. 시의 원형이 노래라고 하잖아요. 더 노래를 해야겠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해요."

- 앞의 질문을 한 이유는…. 2000년대 등단한 젊은 시인들의 시집은 새 시집이 나올 때마다 '이 시인의 세계가 전복된다'는 생각이 들만큼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거든요. 이병률 시인의 시집은 그렇지 않았어요. 3권이 연장선에 있는 느낌이 듭니다.

"네. 제 시집은 오버랩이 됐지 전복되는 시기를 겪진 않았던 것 같아요. 돌아보면 10년 정도 쓴 시를 3권으로 나눠 낸 거니까. 그 10년에는 변화가 별로 없었던 셈이죠. '나는 어떤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혼자 쓰는 편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해요."

- 표제작을 '찬란'으로 정하고 나서 쓴 시가 이 시집의 3분의1이라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지금은 과도기인 셈인가요? 다음 시집은 어떻게 달라질 거라고 보세요?

"그 형태를 독자들이 난해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이전 시들이 이별이나 여행, 슬픔처럼 제 인생의 가라앉아 있는 시기에 뭘 끄집어내어 쓴 시였다면 최근에 인생에 즐거운 맛을 느낄 때 시를 쓰면 어떨까, 생각해 보죠. 분명 달라진 시가 쓰일 거예요. 그리고 그 시의 본질은 노래에 가 닿아야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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