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빌 브라이슨의<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주 탄생서 세포까지 누구나 품었을 법한 궁금증 담아

왜 지금, 나는 여기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문학적 사고의 벽에 부딪쳤을 때, 사랑과 이별이 바람개비처럼 맴도는 모순을 더 이상 용납하기 힘겨울 때, 원고지의 사각 모서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질식할 것 같은 무호흡의 순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펼쳐 든다. 어느 페이지라도 상관 없다. 시선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멈춰서 있던 시간이 문을 열고 우주로 향하는 길이 시작된다.

빌 브라이슨은 3년 동안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거대한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세포와 같은 미시세계까지, 과학 분야에 유난한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법한 과학에 대한 '거의 모든 의문'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저자는 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생물학 등 딱딱하고 소통 불가능할 것 같은 과학적 원리와 논쟁들을 믿을 수 없이 흥미롭고 놀랍도록 풍성한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밀폐되었던 공기가 치환되듯 지적 충만감이 팽창되는 사이 뙤약볕에 녹은 아스팔트처럼 흐물거리던 좌뇌의 주름이 탱탱 볼처럼 탄력을 되찾는다.

"당신의 몸 속에 있는 원자들은 모두 몸 속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몇 개의 별을 거쳐서 왔을 것이고 수백만에 이르는 생물들의 일부였을 것이 거의 분명하다. 우리가 죽고 나면 그 원소들은 모두 재활용된다. 그래서 우리 몸 속에 있는 원자들 중 상당수는 한때 셰익스피어의 몸 속에 있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몸 속에 있던 원자들은 모두 흩어져서 다른 곳에서 새로운 목적으로 사용된다. 나뭇잎의 일부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몸이 될 수도 있으며 이슬방울이 될 수도 있다. 원자들은 실질적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과학교과서에서 낯선 용어로만 존재하던 원자를 이렇게 장엄하고 신비스럽게. 이토록 가깝고 내밀하게 느껴본 적 있는가. 과학은 수업시간 칠판을 가득 채웠던 암기해야 할 용어의 나열이 아니고 난해한 그래프나 수식도 아니다. 숫자가 우주와 인간을 해석하는 패턴이라면 과학은 자연과 생명, 우주의 본성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처럼 수학과 과학이 배제된 예술은 아름답지도 않고 완전할 수도 없다. 그것은 문학과 삶에서도 다름없을 것이다.

역사는 직진만 하지 않는다. 때로 멈칫거리고 우회하며 혹은 정지하고 뒷걸음질치다 완전히 소멸된다.

"인간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던가는 아무도 정확하게 모르지만 지난 5만 년 정도의 세월 동안 우리가 가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짐승들이 사라졌다."

이 책이 전하려는 것은 과학의 방대한 이론이 아니라 인간은 다만 우주와 자연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엄청난 행운을 얻은 생명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소박한 진실이다. 그리고 우주와 생명의 역사를 인간이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당연하고도 무거운 소명이다.



김규나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