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영아자

어머니께서 달래장이라고 만들어 놓으셨다. 일반적인 양념장에 달래를 잘게 잘라 넣은 장인데 음식에 살짝 얹어 먹으니 입안에 가득 봄이 느껴지는 듯하다.

정월대보름이 지났으니 묵은 나물로 대신하던 계절은 지나갔고 이제 새로 돋은 새 산나물의 세상이 다가왔다.

요즈음은 하우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푸성귀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 때가 되어 만나는 봄나물들의 신선함과 향기로움을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산나물은 곰취, 참취, 참나물 같이 유명한 식물들도 있지만, 산과 숲이 가까운 곳에 사는 분들은 대개 아주 다양한 식물들의 어린 순들을 이것저것 함께 섞어 쓰곤 한다. 그러면 가지가지 영양가도 많을 터이고 설사 잘 몰라 다소 독성이 생기는 식물들이 섞여 있어도 해독이 되고, 맛도 좋고 ….

내가 일하는 숲 근처에 사시는 마을 분들은 앞에서 나열한 유명한 풀들이 아닌 더욱 특별한 봄나물로 치는 풀이 있는데 그걸 미나리싹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미나리의 새싹을 좋아하나보다 했더니 우리가 알고 있는 미나리와는 전혀 다른 풀이었고 그 이름은 영아자였다.

영아자는 초롱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잔대나 금강초롱 같은 아주 고운 남보라빛 꽃잎을 가졌지만 꽃잎이 아주 가늘게 그리고 아주 깊이 갈라져서 꽃만 보아도 개성이 넘치는 그런 식물이다. 가느다란 꽃잎은 피어나면서 뒤로 도르르 말리고, 수술은 곧게 뻗어 나오며, 들여다 볼 수록 새록새록 재미있다. 그 수술 아래를 보면 털이 소복하니 달려 찾아온 벌들이 제대로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사실 나물로 먹는 잎은 손가락 길이 만한 달걀 모양이고 가장자리는 불규칙한 톱니를 가지며 중간 정도에 달리는 잎들은 밑부분에 날개 같은 짧은 자루가 있는 것이 특징이랄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그야말로 식물에 고수인, 숲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 아니고는 쉽게 알아보고 그 맛을 만나기 쉽지 않다.

꽃은 한 여름에 피어 가을이 오도록 비교적 오래 핀다. 꽃은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다른 식물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면 부작용을 낳을 만큼 집착이 강한 분들의 집요한 손길에서도 아직 건재해 전국의 산에서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자라고 있다.

산나물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심지어 때가 되면 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나물꾼들로 인해 심신산골의 야생화 천국이 훼손되는 걸 본다. 그러나 정말 숲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식물이 근본적으로 상하지 않고 이내 옆에서 새 순을 올릴 수 있도록 살짝 살짝 끊는다. 그래야 이내 다시 순을 올려 식물체도 튼튼히 자라고 꽃도 피어 후손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