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재일소설가 양석일장편 <어둠의 아이들> 출간과 영화개봉 맞춰 방한

불편한 감동. 재일작가 양석일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의 심정은 아마 이 한 마디로 집약될 게다.

식민지 시절 일본을 살아가는 재일조선인을 그린 <피와 뼈>, 일본 전후 50년 역사를 관통한 <밤을 걸고>, 아동매매와 아동 매춘의 실상을 해부한 <어둠의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외면하고 싶은 아시아의 상처를 날 것으로 드러낸다.

촘촘한 묘사는 생생함을 넘어 불편하기까지 한데, 이 불편함이란 자신의 치부를 타인 앞에 드러낼 때의 부끄러움 같은 것이다.

이 복잡한 감정을 꾹꾹 눌러 한 권을 다 읽어내면, 또 다른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한다. '이것이 인간의 현실'이라는 자각이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어둠의 아이들>에 출연한 미야자키 아오이는 말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습니다만, 회피하지 말고 이 현실을 꼭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재일소설가 양석일 씨가 장편 <어둠의 아이들> 출간과 영화 개봉에 맞춰 한국을 방문했다.

회피하지 말고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리얼리즘 소설은 삶의 구체성에서 시작한다. 이 구체성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종의 '메시지'가 필요하다. 재일소설가 양석일의 그것은 '아시아적 신체'다. 이것은 다시, 그의 삶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

1936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소설('피와 뼈')처럼 식민지 시절 일본에서 살았다. 생업을 위해 미술인쇄일과 사업을 했던 그는 우연히 책방에서 헨리 밀러의 <남회귀선>을 읽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을 잡고 십 년간 도쿄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다.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원작: 택시 광조곡)로 주목받았다. 그의 나이 마흔 다섯 때다. 이후 몇 편의 소설을 거쳐 자신의 아버지를 모델로 한 작품 <피와 뼈>를 발표했다. 한국 독자에게 그의 존재가 각인된 건 이때부터다.

다시,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아시아적 신체'로 돌아가자.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난 그는 '반쪽발'로 살았다. "일본인의 몸에서는 오줌 냄새가 난다", "조선인의 피는 더럽다"는 말을 모두 듣고 자랐다. 그는 이 말이 신체를 이용한 차별 표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체를 이용한 차별은 어느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국가적 폭력으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폭력은 나쁜 것'이라 배우지만, 권력을 획득한 어른들의 폭력은 질서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1923년 조선인 학살과 1940년대 아시아를 휩쓴 제국주의가 그렇다.

그는 신체를 이용한 차별과 폭력, 그 폭력이 권력의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과정을 '아시아적 신체'라 명명한다. 그가 써낸 거의 모든 작품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81), <밤을 걸고>(1981), <피와 뼈>(1998)를 관통하는 근본 사상이다.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된 소설 <어둠의 아이들>(문학동네)도 아시아적 신체의 가장 비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타이의 어린아이 센라는 인신 매매꾼에게 팔려 프리가토 호텔에 매춘부로 들어오게 된다. '작은 케이크'란 뜻의 이 호텔은 1세계 소아성애자들의 욕망이 집결된 곳이다. 아이들은 원화로 36만 원 정도의 헐값에 팔려 매춘을 강요당하고 에이즈에 감염되어 쓰레기하치장에 버려지거나 산 채로 장기를 적출당한다.

호르몬제 과다투여로 피를 토하며 죽는 소년, 에이즈 감염 후 산 채로 쓰레기장에 버려진 소녀, 심장 이식 수술 대상자로 영문도 모른 채 병원에 끌려가는 소녀, 소아성애 취향의 독일인 부부에게 입양되는 소년의 이야기가 날 것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고, 산 채로 장기이식을 당하는 아이들이야말로 아시아적 신체의 표상이다. 최근 국내 문학계에서 조명받는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개념과도 일맥상통한다. 아이들은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체계적으로 양산되는 산 죽음(living dead), 떠도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이 일본과 한국, 차별과 분쟁을 벗어나 현대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세계를 바라봐야 합니다. 세계를 보는 것으로 자아를 알게 되기 때문이죠. 작가는 타자와 마주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타자는 나를 알게 해준다는 면에서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세계 본질이 무엇인지 그 관계성을 알게 해줍니다."

소설은 그의 작품 , <피와 뼈>처럼 사카모토 준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2008년 일본에서 개봉되어 호평받은 이 영화는 3월 25일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곧 이어 그의 소설과 사상을 담은 <양석일 라이브러리>가 도서출판 새에서 출간된다. 첫 책으로 평론집 <아시아적 신체>가 번역 출간되고, 절판된 소설 <피와 뼈>가 재출간된다. 만화로 그려진 <밤을 걸고>도 펴낼 계획이다.

- 소설 <어둠의 아이들>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소설은 세상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를 묘사했다. 세상에는 빛과 어둠이 있다. 어둠에 사는 사람은 빛의 세계가 대단히 잘 보인다. 그러나 빛의 세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의 세계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빛의 세계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존재는 여성과 아이 같은 약자들이다."

- 작가의 소설은 주류에서 벗어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이 주를 이룬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작가는 기본적으로 약자, 억압받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알리는 사람이다. 물론 권력을 대변하는 작가도 있다. 시바 료타로(일본 역사소설을 완성시킨 소설가, <언덕위의 구름>등이 NHK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등 국민작가로 칭송받았다)의 소설에는 언제나 영웅만이 등장하지 않나? 그러나 나는 작가는 약자의 삶, 어둠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소설에서 밝은 사회 속 어둠을 말하고 싶다."

- 작품에서 폭력과 외설적 장면이 그대로 묘사된다.

"논픽션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쓸 수 없다. 이를테면 프리가토 호텔 안의 상황을 쓰거나 카메라에 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소설은 다르다. 작가로서 프리가토 호텔 안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실을 넘어 궁극적인 본질을 알릴 수 있다고 본다. 일명 '허구의 진실'이다. 미디어나 논문 같은 논픽션이 지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쓸 수 있다."

- 국내 출간되면서 출판사 문학동네가 '19세미만 구독금지'를 결정했다. 미성년자는 이 작품을 읽지 못한다.

"출판사 측이 출간 금지를 우려해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이라고 들었다. 이렇게(출간 금지를 우려해 자체 결정을 내리는 것) 규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이 규정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수십 년 전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출간금지 처분을 받고 논쟁이 된 적이 있는데 '표현의 자유'가 이겼다. 이후 이런 논란이 없었다. 사실 외설이라 규정하는 쪽이 외설적인 것 아닌가."

- 영화로 만든 <어둠의 아이들>, 감상평은?

"영화와 소설은 전혀 다른 장르라고 생각한다. 감독도 하나의 예술가이고 그 생각을 존중한다. 실제로 <어둠의 아이들>은 영화와 소설, 결말이 다르다. 그럴 수 있다. 원작자로서 요구하는 것은 '아시아적 신체'란 주제가 작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앞으로 작품 계획에 대해 알려 달라

"4개 소설을 연재해 왔다. 지난 달 잡지 <주간금요일>에 발표한 <돌고 돌아오는 봄>연재가 끝났고 이 작품이 5월 중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2차 대전 당시 종군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