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창조의 제국>'yBa' 탄생과 신화 그리고 영국 현대 미술의 현주소 보여줘

데미언 허스트, '신의 사랑을 위하여'
그러니까 이 책에는 문이 달려 있습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달려 있는 문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이 문을 열고 들어갈지 말지는 당신의 몫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니까요.

문 안쪽에는 포름알데히드 방부액을 가득 채운 거대한 수조 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상어가 떠 있습니다.

<살아 있는 자가 상상할 수 없는 육체적 죽음>이라는 제목이 달린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입니다. 또, 자기의 몸에서 뽑아낸 피를 얼려 자화상 조각을 만든 마크 퀸의 <셀프>라는 작품도 전시 중입니다.

그러니 동물의 사체를 방부액에 담가 놓은 그것을 예술이니 뭐니 할 것 없이 그냥 그 문을 지나쳐도 됩니다. 혹은 문 안으로 들어가 사납고 민첩한 움직임을 일시에 정지시킨 죽음의 공포스러운 위력에 마음을 흔들려도 좋을 듯합니다.

또한 검붉게 얼어붙은 피의 얼굴을 끔찍하게만 일별해도 좋습니다. 혹은 전기 코드가 뽑히면 녹아 줄줄 흘러내릴 피의 자화상을 보면서 존재의 아슬함에 눈을 깜짝여도 좋겠습니다.

혹은 인상을 찌푸리거나 계란을 던지거나 문 앞에서 시위를 해도 좋습니다. <마이라>라는 마커스 하비의 작품은 실제 어린이 연쇄살인범인 마이라의 초상화를 그려 놓은 것인데, 그것도 작은 아이들의 손 모양에 물감을 찍어서 그린 형태이니까요. 또, 트레이시 에민의 <내가 같이 잤던 모든 사람들1963~1995>은 작고 아늑한 텐트 안에 자신과 잤던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 놓았습니다.

실제로 이 <센세이션>이라는 전시에서 관객들은 <마이라>라는 작품을 철회하라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고, <내가 같이 잤던 모든 사람들1963-1995>의 작품 속에 이름이 나오는 한 남자는 신랄한 야유를 퍼붓기도 했답니다.

<창조의 제국>은 yBa(young British artist)의 탄생과 그들의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영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생생한 도판과 함께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현대미술에 문외한인 저 같은 독자라면 '책으로 넘기는 미술관' 정도 되는 독서의 방식을 택하면 좋을 듯합니다.

1997년 <센세이션>전을 통해 급부상한 yBa의 신화는 그것에 얽힌 주변상황과 컬렉터, 화상, 미술기관 등의 이야기를 통해 그 눈부심 뒤에 다양한 욕망들의 충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풋내기 작가들로 출발한 yBa는 불세출의 사업가인 사치(Saatchi)라는 컬렉터를 만나면서 막강한 자본과 제도의 흐름을 타고 스타의 플래시를 받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상상력은 거래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자극할 수 있는 예술 감각들이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yBa를 미디어의 과대광고에 지나지 않는다고 혹평하기도 합니다.

최근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어느 작가의 전시에서 저는 벽에 걸린 한 작품에 발길이 머물렀습니다. 짙은 갈색으로 화폭을 덮고 그 위에 도드라진 글씨로 'Saatchi'라고 조각해 놓은 것이었는데, 작품 전체가 초콜릿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달콤해서 유혹적인 물질인 초콜릿으로 거대한 권력을 비유하고 그것을 조롱한 것이었지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없다면 창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은 영국의 현대미술이 어떤 견제와 균형으로 지금에 이르렀는지,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전위적인 현대미술이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를 예술적 상상력에 기반한 '창조'의 개념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술적 상상력은 소통의 가치를 얻지 못할 때, 떨어져 내리는 새와 같습니다. <내가 같이 잤던 모든 사람들1963~1995>이라는 작품이 성적 편력의 증거물만이 아닌, 인간적 존재의 한 단상으로 느껴질 때, 그 상상력은 예술적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작품인 텐트 안에는 옛날 남자친구의 이름뿐만 아니라 할머니 등 가족들의 이름과 유산된 태아의 이름도 적혀 있는데, 이는 여덟 살 때 성폭행을 당하고 성인이 되어 낙태를 겪은 작가 자신의 처절한 존재론적 기록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상상력은 얼마입니까"라고 물을 때 그 가격은 소통의 가치로 매겨지는 것이겠습니다.



신영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