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김숨 소설가물, 불, 소금… 서로 다른 존재들의 가족들 공멸과정 환상기법으로 드러내

'김숨의 소설은 심상한 것들을 심상하게 오래 바라보다가 그 심상함이 수상함으로 변하는 순간들에 대한 보고서다.'

작가의 신간 <물>에 붙인 시인 강정의 표사다. 작품을 흉보는 말이 표사로 실릴 일은 없을 테지만, 시인의 이 말은 기실 김숨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그녀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 앞에 종종 '오랜만에 보는 사회파 작가'(문학평론가 신수정) 혹은 '산업화 시대에 대한 반성적 재평가와 관련된 서사적 기획'(문학평론가 우찬제)이란 평이 붙지만, 이 평가는 작품이 읽혀진 결과일 뿐, 작가의 작품을 쓴 '의도'는 아니라는 말이다.

올해로 등단 13년인 그녀는 그동안 두 권의 단편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 한 권의 성장소설을 발표했다. 특히 <백치들>, <철>등 장편에서 산업화 시대 소외된 노동의 모습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그려내 주목받았다.

때문에 소소한 이야기가 넘치는 오늘의 문학계에서 김숨의 작품은 '오랜만에 보는 사회파' 작품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70~80년대 산업역군으로 중동에 갔다 돌아온 아버지를 그린 <백치들>, 조선소를 배경으로 소외된 노동의 모습을 그린 <철>은 이런 짐작을 확신케 한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작가가 바라보는 사회는 전복과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80년대의 그것과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지난 해 <철>이 발간된 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철이라는 금속과 노동, 노동자, 집단노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근대화를 비판하고 현실을 비틀게 된 것 같습니다. 투쟁의 대상으로서의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을 다룬 노동문학이나 본격적인 리얼리즘 소설은 아닙니다."

자신을 매료시키는 '심상한 것에 대한 집요한 보고서', 이것이 김숨이 썼던 소설의 모양새다.

물, 불, 소금으로 태어난 인간 군상

세 번째 장편 <물>은 제목처럼 물에 대한 관찰기다. 물의 이미지는 소설에서 어머니로 형상화된다. 어머니인 물 또한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무릇 존재란 비교대상을 가질 때, 자기 정체성을 갖는다. 아버지의 이미지가 불이 된 이유일터다.

이 부부가 소금과 금, 공기를 세 딸을 낳는다. 300만 톤의 물이 있던 저수지를 메운 터 위에 세워진 집에서. 그러니까 이 소설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면서도 추상적인 소설이다. 그로테스크한 묘사,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환상성은 이전 작품보다 한층 발전했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불운', '산업화 시대 노동의 소외' 등의 키워드로 김숨의 작품을 읽던 독자에게 이는 분명 변화로 보일 터다.

그러나 시인 강정의 말처럼 그녀의 작품이 '수상함으로 변하는 순간'에 대한 한 편의 보고서라는 점을 간파한다면, 이 작품 역시 기존 장편과 궤를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맨 마지막, 작가의 말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물에 사로잡혀 살았다. 저 먼 기억 속 저수지에 고인 물을 떠올리려 애썼고,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물을 카메라 렌즈처럼 포착하려 했고, 쌀알만 한 물이 말라 없어질 때까지 멍하니 들여다보기도 했으며, 물 속에 벌거벗은 몸을 담그고 오래오래 시간을 흘려 보내기도 했다.' (297페이지)

장녀 소금은 짧은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어머니 물, 자매 금과 공기가 사는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날 밤 수족관과 14년 전 가출했던 아버지 불도 집에 들어온다. 30년 전 그가 혼자 저수지를 메워 만든 집에 실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러나 그 집에서 수돗물이 갑자기 끊기고 가족의 일상은 마비된다. 물에서 얼음(몸의 마비)이 되는 일이 잦던 어머니는 메마른 수족관 안에 누워 병들어간다. 아버지는 가장의 책임은 회피한 채 사랑하는 딸 금의 순도를 높이려 매일 밤 금의 몸에 수상쩍은 연금술을 행사한다. 장녀 소금이 수도관 공사를 위해 불러들인 배관공은 금을 능욕한다.

어려서부터 금을 질투했던 소금은 이를 방관하고, 배관공이 떠난 후 금은 납을 낳는다. 공기는 종교에 빠져 이 아수라장을 외면한다. '미친 딸들과 전염병 걸려 죽은 엄마가 있는 집'엔 은행 빚과 수도세를 독촉하는 자, 사이비 종교인들만이 가끔 오간다.

이 '허무 맹랑한' 작품이 왜 문학이 되는가. 무릇 모든 소설은 허구라는 것. 작가는 그 허구를 통해 세상의 이면을 포착해 내는 자라는 것. 소설은 만물의 근본인 물을 통해 삶과 죽음, 존재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

불과 몸을 섞어 소금, 금, 공기 세 딸을 낳은 곳, 수족관은 삶이 탄생하는 공간(자궁)이자 어머니 물이 삶을 마감하는 죽음의 공간(관)이다. 이 공간의 주인이 어머니 물이다. 물, 불, 소금, 금, 공기 등 서로 다른 심성을 지닌 존재들이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공멸해 나가는 과정을 환상적 기법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300만 톤의 물을 몰아내고 지은 집에서 어머니가 죽은 이후, 다시 300만 톤의 물이 밀려온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물이다."(296페이지) 공기와 금은 떠내려가고 집엔 아버지 불과 소금, 금의 아들인 납이 남는다. 이렇듯 작품은 중층적 알레고리를 통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미지로 충만한 이 특별한 소설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인터뷰
'물에 대한 나만의 이야기 쓰는 것 의미있어"
- 형식이 일반적인 소설과 다르다. 서사보다 이미지가 강하고, 물, 불 등 물질을 의인화한 것도 독특하다.

"물질을 의인화해 물질들 간의 관계, 뒤틀리고 집착하는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 장편 <철>을 쓸 때도 그랬지만, 물질만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 유독 '물'이라는 소재에 집중한 계기가 있었나?

"물은 모든 사물을 이루는 근본적인 물질이지만 여러 신화나 이야기에서 심판 역할을 하는 무서운 물질로 등장하기도 한다. 물에 대해 나만의 이야기로 써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에 관한 시는 몇 편 있지만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 소설에서 물 이외에 불, 공기, 금, 납 등이 가족 구성원으로 나온다. 화자는 장녀인 소금이다.

"물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대되는 물질, 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두 가지 물질이 기본 물질이라고 생각해 부부로 설정했다. 금은 연금술과 관련해 불과 관계 깊다. 때문에 아버지 불이 사랑하는 딸을 금으로 정했다. 한편으로 금은 완벽한 금속이기 때문에 화자가 될 수는 없었다. 소설에서 화자는 자의식이 강하고, 결핍된 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금을 화자로 했다. 소금은 물에 녹으면서 사라지지만, 동시에 물속에 녹음으로써 존재 가치를 드러낸다. 용해되어야 짠 맛을 내고 음식의 간을 낸다. 어머니 물을 멀리해야 하지만, 또한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 장녀인 소금의 운명이다."

- 작가의 말에서 '바슐라르의 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어떤 부분인가?

"위대한 철학자이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과 표현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문장이 시적이다. 바슐라르의 책을 구체적으로 인용했다기 보다는, '이 정도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회의감이 들 때마다 긴장을 주었다."

- 다음에 쓸 작품은?

"개를 소재로 단편을 쓰고 있는데 분량이 늘어나 300매 정도의 중편이 됐다. 그 작품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중편을 그대로 발표할 수도 있다. 가을에 세 번째 단편집이 나온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