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작가] 소설가 김서령장편 <티타티타>출간… 29살에 시작된 성장통 담담히 풀어놓아

그러니까 그녀의 첫인상이란 깐깐하고 똑똑하고 예민한 여류 지식인 같은 것이다.

미니스커트, 까만 뿔테 안경, 폭탄머리는 한동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고, 작고 마른 그녀의 직업은 또한 소설가다.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 순종적인 여자를 '착한 여자'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 그 옛날 B사감의 그로테스크한 환생 같은 그녀의 첫 인상이 좋을 리 없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그녀는 후배 신인 작가의 응원 차, 한 문학학회 대담회에 왔다. 그날은 미니스커트가 아니라 배기팬츠를 입었는데, 팬츠 색과 똑같은 블랙 셔츠와 블랙 빅 백과 역시나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까만 색 폭탄머리를 한 그녀를 보고 한 후배가 말했다.

'만화책 한 장면 같았어.'

그러나 사람의 매력이란 언제나 의외성에서 나오는 법이다. 팔짱끼고 술잔만 볼 것 같던 그녀는 그날 저녁 뒤풀이에서 삼겹살이 노릇하게 익을 때쯤 부지런히 뒤집어 각자의 자리 앞에 '분배'했고, 맛있게 폭탄주 제조하는 비율을 알려주었고, 눈이 마주치면 잘 웃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냐?"는 질문에 "월간지에 장편 연재 중"이라고 입을 뗀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깜냥'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장편 쓰면서 '내 깜냥에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이번 달 마감 날짜도 지났어…."

곧 이어진 2차에서 홀짝홀짝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고는 후배인 신인 작가의 무릎을 베고 폭 쓰러졌다.

쓰리고 아릿한 이야기

앞은 모든 이야기는 소설가 김서령에 관한 팩트이고, 이는 그녀가 쓴 소설의 모양새와 닮아있다. 2003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그녀는 2007년 단편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와 얼마 전 장편 <티타티타>를 냈는데, 제목에서 보듯 소소한 이야기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차갑고 깐깐할 것 같은 인물들이 사실은 제 각각의 고민을 가진 채 삶을 묵묵히 견뎌낸다는 간명한 사실을 그린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녀가 1.0의 시력에도 검은 뿔테를 쓰는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처럼, 연재에 시달려 40kg이 안될 만큼 살이 빠지면서도 '깜냥'이란 말로 웃어넘기는 것처럼.

'작가들은 대체로 두 종류로 나뉜다. 자신이 만든 인물을 통해서 특정한 결론을 향해 질주하는 작가와 텍스트라는 세계 안에 가만히 자신의 인물들을 던져두는 작가. 김서령의 <작은 토끼야 들어와 편히 쉬어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로 후자에 속한다.'

평론가 이정현의 이 말은 이후 쓴 장편에도 해당하는 말이다. 김서령의 소설 속 인물들은 아픔을 토로하며 하소연하지 않는다. 인물 간에 뚜렷한 갈등조차 발생하지 않고, 사소한 의문들과 그것의 해소가 전부인 이야기다. 작가는 먼발치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의 일상과 그들의 작은 움직임을 관찰할 뿐이다. 이 건조한 시선이 소설을 일방적인 신파에서 벗어나게 한다.

서른 살의 성장통

네 계절이 지나 다시 본 그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린 폭탄머리는 단정한 단발머리로, 미니스커트와 배기팬츠는 데님과 캐주얼 재킷으로 바뀌었다. 검은 뿔테 안경은 그대로였는데, 안경테는 새 것으로 바뀌었다. 통통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전보다 살도 붙었단다. 그리고 장편 소설을 출간했다. '깜냥'을 입에 달고 썼다던 그 작품 말이다.

"소설을 쓸 때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가?'란 질문에서 시작해요. 이 장편을 쓸 때는 끝나지 않는 성장담에 대해 말하고 싶었죠. 전 서른일곱이 된 지금도 성장통이 계속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어른이 되어서도 겪는 성장담을 써보자, 그렇게 시작했어요."

작가는 "여성의 이야기, 왜곡된 가족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작가의 관심이 이 작품을 구성하는 두 축이다.

이야기는 어린 소연과 미유가 피아노학원에서 '티타티타'(젓가락 행진곡의 애칭)를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 소연은 싱글맘 아래서 성장했다. 소연은 엄마와 이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지만 아버지의 부재는 채울 수 없는 결핍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미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정을 베푸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를테면 밥상 앞에서 자식에게 영어 테스트를 하고, 딸들의 혼사를 위해 주변 지인 아들들의 '스펙'을 수첩 빼곡하게 써두는 방식의 애정 표현 말이다. 어른이 된 소연은 중학교 교사로, 미유는 스튜어디스에서 쇼핑 호스트로 전직했다. 소설은 친자매처럼 자란 소연과 미유의 가족사와 연애를 합주곡처럼 들려주면서 이들의 성장통을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미유가 소연의 애인과 가까워지면서 둘의 관계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평온하던 이들의 가족에도 풍파가 닥친다. 제 자식처럼 조카를 보살폈던 소연의 이모는 희생으로 점철됐던 제 삶을 드러내놓고 후회하고, 번듯한 남편과 결혼해 독일에 살던 미유의 언니는 우울증을 앓다 남편과 두 아들을 두고 홀로 귀국한다.

이렇게 친구, 연인, 가족은 서로에게 고통만 주는 관계가 되고 만다. 스물 아홉 살에 시작된 성장통이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한 시절과 이별을 고하는 작가의 필치는 지극히 담담하다. 바로 그 담담함이 이들을 구원한다. 이들은 내부에서 터진 파탄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우리 사회 주변인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장편에는 단 한 명의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싱글맘을 택한 소연의 엄마 역시 "누군가 희생이 따르는 가족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넣은 설정"이지만, 가족 제도를 전복시키려는 여장부의 모습은 아니다.

"소설을 드라마틱하게 변화시키고, 인물을 끌어가는 것에 흥미가 없어요. 인물이 한 순간에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생이 그렇게 만만한 것도 아니고요. 소설 속 인물들도 좌절을 겪을 거고, 혹은 성공할 수 있겠죠. 소설 속 인물들을 내버려두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이렇듯 작가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격랑을 견디는 생의 안간힘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현학적인 철학 이론과 그로테스크한 방식의 말하기가 현현하는 오늘의 문학시장에서 독자는 오랜만에 자유로움을 느낄테다.

'내 소설은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한 가지의 방식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말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 말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나는 오래 사랑하고, 오래 쓸 것이다.' (310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늘 제가 생각하는 소설은 '이야기'에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이야기, 위로하는 이야기,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 먹먹해지는 이야기, 읽고 나면 아릿한 이야기. 그게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제가 쓸 수 있는 것이 또 그 뿐이라고 생각해요."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