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알록제비꽃

오월을 눈앞에 둔 지금, 온 사방이 꽃잔치로 지천이어야 할 때인데 산간에는 눈도 쌓였다 한다. 따사로운 봄볕에 산야를 활보해야 할 이 좋은 계절에, 온기가 끊어진 연구실에서 겨울옷을 입고 잔뜩 웅크리고 앉아 있자니 기분이 말이 아니다.

이즈음에는 어떤 풀이 나고 어떤 나무에서 꽃이 피는지 식물조사를 떠나는 일이 관습적으로 몸에 배었는데 길을 떠나도 얼마나 많은 꽃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수상한 계절에 당황하기는 식물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이제 산에 피어나기 시작한 벚꽃잎들은 세찬 바람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막 물이 오른 연한 잎새들은 추위에 제대로 자랄 수도 없는 난감한 처지일 터다. 이 갑작스런 날씨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지금 산에 가면 이런 저런 풀들이 올라와 꽃을 피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한 생명력을 보이며 어김없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들이 바로 제비꽃 종류들이다. 제비꽃은 이미 이 지면을 통해 "우리집 문패꽃, 꽃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 일명 오랑캐꽃이며 바이올렛(보라색)이 바로 제비꽃류를 총칭하는 바이올라(Viola)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봄산에는 제비꽃 집안 식구들이 보라색 꽃을 피우는 제비꽃 말고도 수십 가지에 달한다. 이 모든 것을 다 알아내는 것은 식물학자들에게도 어려운 숙제이지만 가장 흔하고 어디에나 있는 5가지 종류만 알아볼 수 있어도 봄 산행은 즐거워질 것이다. 나를 반겨주는 숲속의 요정 같은 꽃들을 만나게 되는 일이니 말이다.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노란색 꽃이 피는 것은 무조건 노랑제비꽃이다. 북부 지방에 가기 전에는 말이다. 제비꽃 집안 식구들은 보통 숲의 초입에 많은데 노랑제비꽃이 가장 높은 곳에 산다. 그리고 흰 꽃이 피었는데 잎이 많이 갈라져 있다면 그건 남산제비꽃이다. 남산에서 처음 발견되었다는데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나 만날 수 있다.

남산제비꽃을 알아보았다면 허리를 굽혀 향기를 맡아 보자. 작은 꽃이지만 풍부한 꽃향기를 가졌다. 분홍색 꽃이 피었는데 잎들이 고깔처럼 말려서 나고 있다면 그것은 이름 그대로 고깔제비꽃이다. 말려 있는 잎이 고깔콘이란 이름을 가진 과자의 모양과 크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잎의 색은 연두빛으로 싱그럽다. 콩제비꽃도 구별하기 쉽다. 보라색 줄이 있지만 흰 꽃을 가진 이 풀은 이름 그대로 콩알만큼 작다. 꽃의 크기도 딱 그만하고, 신장모양의 잎도 1-2cm정도이니 이 제비꽃 역시 이름이 무색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알아보기 쉬운 것이 오늘의 주인공 알록제비꽃이다. 알록제비꽃은 분홍색에 자주색을 약간 섞은 듯한 꽃색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개성 있는 것은 잎이다. 진한 초록색의 잎에 흰줄 무늬가 알록달록 나있어서 이름도 알록제비꽃이다. 그래서 누구나 관심만 있으면 금세 알아볼 수 있다. 청자오랑캐, 청알록제비꽃, 알록오랑캐, 얼룩오랑캐 같은 별명들이 있다. 잎의 뒷면도 자주색인 것을 구별하여 자주알록제비꽃, 그렇지 않은 것을 청알록제비꽃이라고도 한다.

이웃나라 사람들은 이 알록제비꽃의 다양한 무늬, 잎과 꽃의 색들을 선발해 수십 가지의 품종들을 만들어내고, 이것들을 묶어 한 권의 책을 만들 정도이다. 하찮은 풀꽃을 귀한 자원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애정 어린 관심에서 시작한다. 이 스산한 봄날, 날씨의 변덕을 극복하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을 알록제비꽃 구경으로 그 애정을 시작해도 좋을 듯 하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