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문학작품속 왜곡된 사례 인용… 근거없는 환상과 신화 만든다 주장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내게, 문학의 에피세트를 겨냥하고 있는 책으로 읽힌다.

"내가 운 좋게 회복된다면, 이 열정이 나를 죽일 겁니다."

"나는 정신적으로 아프답니다. 폐 속의 질병은 내 정신적 질병이 넘쳐흐른 것에 불과하지요."

위의 문장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키츠가, 아래 문장은 <성城>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남긴 말이다. 한 사람은 시인이고 한 사람은 소설가이지만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에게 찾아온 질병을 미화하고 은유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예술가의 전형적인 초상이란 대개 객혈喀血을 하는 시인의 창백한 모습이었다. 하이틴 로맨스나 신파극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보다 극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백혈병을 앓는 아름다운 소녀를 등장시키고는 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에 대한 인간의 관심이 사실과 얼마나 다르게 왜곡되어 있는지를 통찰하고 질병에 드리워진 갖가지 '낙인'과 '은유'를 고발하고 벗겨낸다. 그것은 가공의 이미지들, 신화화, 그리고 고정관념과 편견들에 둘러싸인 사물들의 투명한 본질을 되찾아주는 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온 수전 손택의 일관된 작업에 속한다. 수전 손택은 서문에서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질병의) 왕국의 지형을 둘러싸고 날조되는 가혹하면서도 감상적인 환상을 묘사해 보고 싶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질병이 은유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질병을 다루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는 점이다."

손택은 '어원학적으로 보자면 환자는 고통받는 사람을 뜻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비하한다는 고통이다"라고 지적한다. 질병에 대한 사람들의 은유는 질병 자체를 왜곡시켜 환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수전 손택은 제임스 조이스, 앙드레 지드, 애드가 앨런 포와 카프카 등 수많은 고금의 소설 텍스트들을 인용하면서, 문학 작품 속에서 얼마나 많은 질병들이 사실과 다르게 은유로서 날조되고 왜곡되어 있는지를 실증한다. 이 같은 질병에 대한 낙인과 은유는 결과적으로 질병을 악화시키고 질병에 대해 근거 없는 환상과 신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손택의 생각이다.

수전 손택의 홈페이지(www.susansontag.com)에 들어가 보면 이 책에 대한 <뉴 리퍼블릭>의 서평이 실려 있다.

"<은유로서의 질병>에 실린 두 편의 에세이는 사람들의 공포를 자아내는 치명적인 은유들 앞에서 어떻게 지성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본보기이다."

나도 이 촌평에 깊이 공감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해석하기 이전에 정확히 보여주는 것이며, 의미를 건축하기보다는 해체할 때 제 역할을 보다 분명히 수행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도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