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김기홍 <피리부는 사나이>팔짱 끼고 관망하지 않고 해법 찾아 걷는 희망의 개인

"버스킹을 봤다고? 그게 뭐야? 큰 버스야?"

'버스킹'(Busking)을 처음 들은 친구가 물었다. 대형버스? 분위기는 비슷할 것 같다. 관광버스 북적거림처럼 보는 이를 들뜨게 하니 말이다.

'버스킹'은 거리 연주를 말한다. 서울 대학로나 홍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길 위의 음유시인'이 등장하는, 영화 <원스>나 뮤지컬 <웨잇 포유>를 떠올려도 좋겠다.

지난 5월, 신촌에서 콘서트를 기획․ 진행하며 버스킹 밴드를 만난 적이 있다. 콘서트 참가 팀 중 밴드 '파티 스트릿', '캐비넷 싱얼롱즈', '좋아서 하는 밴드', 래퍼 '술래' 등이 늦은 밤, 버스킹을 벌였다.

이들은 독립 레이블로 음반을 발매했고, 각종 평화․ 생태․ 인디 문화 현장에서 연주를 펼치는 날이 많다. 이름 뉘앙스에서도 정체성은 드러난다. '스트리트'에서 자발적으로 '파티'를 벌이고, 악기를 담은 '캐비넷'을 열어 '싱얼롱'을 선보인다. '술래'잡기하듯 불특정의 관객들을 즉흥연주로 잡아두는 것이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김기홍 소설 <피리부는 사나이>(문학동네)가 떠올랐다. 음악․ 미술․ 문학․ 철학 등 예술과 인문학에 매료된 20대 주인공이, 흠모의 대상을 통해 세계관을 확장하는 내용이다. 지구 평화를 바라는 소설 속 개인들은, 테러의 원인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버스킹을 하기도 한다.

소설은 홍대 일대 연쇄 실종 사건,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영국 런던 열차 테러 사건 등이 발생한 2004∼2005년을 배경으로, 한 청년이 자아를 찾아가는 구성이다. 20대 러브스토리로 시작되는 듯 하나, 중반부터 친구의 실종과 국제적 테러의 연계성으로 이야기가 확장된다.

청춘의 방황을 내적 침잠으로 풀어가는 하루키나 윤대녕 소설의 인물들과 겹치기도 하지만, 김기홍 소설의 주인공이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 '그랬다더라'라는 주변인 진술이 아닌, '답을 찾겠다'는 의지를 발산한다. 청춘의 열병, 칭얼거림으로 매몰될 줄 알았던 주인공은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적극적 자아로 세상과 소통한다.

'어슴푸레 창밖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운동화 끈을 꽉 묶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아직은 멀리 있는 그들을 향해.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319쪽)

언젠가부터 밖에서 소통하는 이벤트가 많아졌다. 월드컵 응원, 프리 허그, 촛불 집회, 버스킹 등, 길 위의 퍼포먼스는 계속된다. '취업난에 허덕이며 인문학은 외면하고 정치의식은 사라진 게 아닐까' 비판받는 젊음이지만, 점점이 거리에 나와 소통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버스킹과 소설의 감동이 겹치는 지점 역시 그랬다. 젊은 세대의 지치지 않는, 자발적 교류였다. 흠모할 게 있으면 그저 좇는 것이고, 길 위에서 답을 얻을 수도 있다. 세상의 무대는 열려 있고, 길목마다의 열쇠는 개인이 쥐고 있다.

슈퍼맨 혼자 사건을 해결하고, 다수가 그를 칭송하던 영웅시대는 끝났다. 특별한 '맨'들만이 유유히 하늘로 날아가는 광경이란 얼마나 고루한가? 세상을 팔짱 끼고 관망하지도 않고, 해법을 찾아 걷는 희망의 개인, 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만날 수 있다.

현재 어떤 이유에서든, 무언가로 막힌 심정을 호소하는 이들이라면, 환풍기가 돼줄 만한 성장 소설이다.



변인숙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