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고]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작품 감상법 통해 독서법, 세상사는 법 고민하게 해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비트루미안 맨(Vitruvian Man)'
에른스트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 2002)는 워낙에 유명한 책입니다. 이 유명한 책을 저는 작년에야 읽었습니다.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한 선생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미술학도도 아니고, 피카소나 고흐 등의 전시회를 보러 간 게 다섯 손가락 안에도 들지 않는 사람이니, 미술사 그것도 서양의 미술사는 들여다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부턴가 관심 있는 비슷비슷한 주제의 책들, 필요에 의해서 읽어야 했던 책들, 누군가 추천했던 책들, 훌륭한 누군가 읽고 있던 책들, 전문가들의 리뷰 등을 고려하며 책들을 읽어냈습니다.

개중에는 목차만 보고서도 읽은 척, 아는 척한 책들도 있지요. 마음의 양식,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하는 책들의 무게가 좀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이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제 삶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한 책입니다. 훌륭한 작품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지요. 저는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을 통해 독서하는 방법과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저에게는 단순한 미술사적 지식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지식이라고 자만하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 곰브리치는 책의 서문에서 말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훨씬 좋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볼 때 비로소 '올바른 균형' 감각을 가질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균형을 통해 사물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저자의 생각인 듯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그림을 보는 것이나 문학을 읽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자만하게 되면 아름답지도 정확하지도 않는 작품들을 보고 좋아하는 척하게 됩니다. 물론 그 작품들이 정말로 좋을 수도, 훌륭한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는 사라지고 어설픈 지식에 현혹되어 좋아하는 척만 하게 됩니다. 혹시나 저평가 받는 작품을 좋아한다고 고백할 경우 무식하다는 말을 듣게 될까봐 걱정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속속 발생하는 문제니까요.

작품의 아름다움이나 훌륭함은 누군가의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며 유명한 책에서 발견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에 따라 가치가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진정한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확하게 보는 것/볼 수 있게 돕는 것이 바로 평론가의 일이 아닐까 자문합니다.



김필남 영화평론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