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띠
야트막한 둔덕너머로 바람 따라 이고지는 풀들을 배경으로 지는 여름 해는 참으로 멋지다. 특히 요즈음엔 띠가 무리를 지어 피고 있어 장관이다.
이미 꽃이 피고 익어 하얀 솜털이 부풀어 오른 띠. 한참을 그 무리 속에서 바라보며 그렇게 초여름의 하루를 보냈다. 한낮에 익은 살갗은 아직 따끈했지만 서늘하게 물들어가는 마음으로 오래도록 편안했다.
띠는 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이름도 모양도 독특하다. 키는 무릎높이쯤 자라고, 산 깊은 곳에는 들어가지 않으며 한적한 시골마을의 길 가장자리나 산길로 이어지는 언덕의 초원에서 자란다. 때론 강가나 바닷가와 이어지는 습지의 초원에서도 보인다.
잎이 거칠거칠하며 포기가 좀 억세다는 느낌 말고는 꽃이 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진다. 줄기 끝이 하나 혹은 둘로 갈라지고 그 끝에 손가락, 크게는 그 두 배 길이 정도의 꽃차례가 달리는데 밑부분에 은백색의 털이 많다. 그래서 처음에 고운 은백의 털이 결을 따라 반짝이는 듯 느껴지고 씨앗을 날릴 때면 한껏 부풀어 전체가 희게 보인다. 꽃잎이 필 즈음에는 은갈색 털 사이사이로 삐져나와 보이는 갈색의 수술과 이보다 진한 암술머리를 볼 수 있다.
땅속 줄기도 단맛이 나서 연한 것은 먹기도 하지만 주로 한방에서 모근(茅根) 또는 백모근(白茅根)이라고 하여 쓴 기록이 있다. 땅속의 뿌리줄기는 백색으로 가늘고 긴데 피를 깨끗이 하고, 열을 내리며 이뇨 및 지혈 효과도 있어 열병에 의한 갈증, 폐열에 의한 천식,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등 여러 증상에 처방한다고 한다. 꽃은 코피를 막는 데 쓰기도 한다. 질긴 줄기가 있어 도롱이를 만들거나 지붕을 얹는 데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이 변하여 이젠 그 친근하던 띠도 변하였다. 바닷가의 한 식물원에 있는 띠의 군락이 언론에 소개된 것을 본 기억이 있다. 지천이던 띠는 조금은 한적하고 깨끗한 곳으로 나가야 그 무리를 만날 수 있다. 달짝하여 씹던 삘기는 너무 단 것이 많아 걱정인 요즘엔 손길이 가지 않지만 이젠 그 무리를 보는 일 만으로도 추억을 떠올리고,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풀이 되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