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만들어진 역사로서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

저자마다 사유를 관통하는 테제가 있게 마련이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에게 그것은 민족주의다. 일반에 알려진 임지현 교수의 저서는 모두 민족주의, 정확히 '민족주의를 벗어나려는 일련의 시도'란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다.

그가 왜 이 분야에 천착하게 됐을까? 예전 인터뷰에서 그는 "유럽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상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80년대에 '마르크스ㆍ엥겔스와 민족문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는데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마르크시즘에 매달리면서도 왜 민족문제는 모두 피해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르크시즘에 조금만 익숙한 사람이라면 '민족은 영원한 실체'라거나 '단군 이래 5,000년을 이어온 단일 민족'이라는 등의 얘기에 당연히 의문을 느껴야 했다. 역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한국사회의 민족 담론이 세계사적 상식과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2004. 5. 27. 한국일보 인터뷰 중에서)

그는 한국사회의 역사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만들어진 역사로서 민족주의와 국사의 해체를 주장해왔다. 일관된 주제는 민족주의지만, 지난 10년간 보여 온 변화는 다이내믹하다. 그는 10 여 년 전, '우리 안의 파시즘'으로 학계에 키워드를 제시했다. 이어 '독재에 대한 대중의 동의'로 '대중독재'가 이뤄졌다는 이론 틀을 정립했다.

<우리 안의 파시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대중독재> 등 그의 저서들은 제목 자체가 당대의 학문 패러다임으로 등장했고, 이중 대중독재론은 '한국 학계가 생산해낸 세계적인 자생이론'이라는 찬사와 '독재정권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만큼 폭넓은 국내외 관심을 받았다는 방증이다. 글 좀 읽는다는 애독가들 사이에서 그의 책은 필독서로 꼽힌다.

이후 내놓은 게 트랜스내셔널이다. 철학 역사 문학 사회 정치 문화 등을 특정국가의 경계에서만 바라보는 국민국가 패러다임을 극복하려는 새로운 인문학 흐름이다. 트랜스내셔널리스트들은 근대 국민국가 모델이 유럽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국민국가 패러다임이 서구 중심주의에 빠져 다른 지역의 역사를 배제하는 문제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한 국가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적 문명 교류의 다양한 맥락에서 살피자는 게 연구의 핵심이다. 2000년대 이후 서구에서 처음 시작된 연구 트렌드이지만, 아직 두드러진 연구 성과는 미미한 편이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는 세계 최초로 트랜스내셔널리즘 연구 네트워크를 결성하는 등 이 분야의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임지현 교수는 이곳에서 '국사(National History)'의 대안으로 '트랜스내셔널 역사학'을 모색 중이다. 임지현 교수는 "민족의 아름다움이나 정의만을 선별해 강조하고 기억하게 하는 천편일률적인 과거 방식의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의 역사 인식으로는 21세기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는 교과서적 통념과 공식 역사의 틀을 해체하고, 역사가 묻고 답해야 할 시대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새로운 세대를 위한 역사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저서로 <새로운 세대를 위한 세계사 편지>,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 <바르샤바에서 보낸 편지>,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오만과 편견>, <이념의 속살>,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등이 있다.

입문자에게 <우리 안의 파시즘>과 <오만과 편견>을 추천한다. 전자는 그가 일반에 알려진 계기가 된 도서이고, 후자는 일본 출신의 역사학자, 사카이 나오키 코넬대 교수와의 대담집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