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소설가 이청준지성의 정치학 '당신들의 천국'서 토속적 정한의 세계 '서편제' 까지

1960년대 한국소설의 맥락을 파악하는 한 방식이 있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시작해 김승옥을 거쳐 이청준으로, 다시 다른 작가로 이어진다는 선조적 이해의 틀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인훈과 김승옥이 60년대 문학의 현장으로부터 현저히 후퇴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을 전제할 때 이 틀은 60년대 문학과 그 이후의 문학을 물과 기름처럼 양분해 읽는 한계에 빠진다.

때문에 혹자는 이청준을 "60년대 문학을 6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문학 전체로 적분하여 그 두께와 부피를 가늠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상수"(문학평론가 권오룡)로 꼽는다. 작가는 1965년 등단해 2008년 작고할 때까지 40여 년간 '소설질'(작가의 표현)에 매진했다.

서울대 독문과에 입학하면서 곧바로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를 경험한 그의 초기 작품에는 자유와 절망이 교차한다. 4·19혁명에서 자유의 단초를 봤다면, 5·16쿠데타에서 절망의 현실을 경험한 셈. 등단작 '퇴원'을 비롯해 '병신과 머저리' '매잡이' 같은 작품은 정치의식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대신 그의 작품은 환자들의 고통에 주목하고 상처를 위무하는 쪽으로 기운다.

작가는 1970년대 들어서면서 전통적 장인의 세계를 파고들기 시작해 판소리의 세계를 서사화한다. 이 시기 그는 현실의 한을 소리로 풀어낸 '남도사람' 연작과 '선학동 나그네', '서편제' 등을 발표한다.

아울러 절망적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담론으로서의 소설'을 선보이기도 한다. 말과 현실이 어긋나고 안과 밖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현실을 형상화한 '언어사회학서설' 연작과 '당신들의 천국' 등은 그런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아마도 교과서와 영화 때문일 것이다. 문학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이청준을 근대 한국인의 한과 아픔을 사랑과 화해로 승화한 작가로 기억한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천년학'(원작 '선학동 나그네'), '축제'와 이창동 감독의 '밀양'(원작 '벌레이야기') 등은 난해한 그의 작품을 친근하게 만드는 교각이 됐다.

이청준은 한국 문단의 대표적인 지성파 작가로 꼽힌다. 장편 '당신들의 천국', 단편 '벌레이야기' 등의 작품에서 보듯 그는 '이런 일이 있었고, 또 저런 일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하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우찬제 씨는 이청준을 "언제나 인간 존재의 근원을 탐문했고,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반성적으로 재성찰했고, 되짚어 숙고하는 가운데 존재 값의 벼리에 다가서고자 했다"(이청준 문학전집 2. 매잡이 해설 중에서)고 평한다. 작가는 이 반성적 성찰을 중층적인 이야기 틀과 복합적인 구성으로 담아 냈다.

그는 권력과 갈등, 집단과 개인의 불화, 언어와 사회의 길항 등 거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부터 고난을 견디는 장소로서의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과 복잡한 심사의 뒤엉킴까지 다양한 인간 문제를 담은 이야기를 파노라마로 엮는다. '당신들의 천국'이 완성한 지성의 정치학부터 '서편제'가 풀어낸 토속적 정한의 세계까지 이청준 문학이 뻗어있는 영역은 기실 우리 삶의 전방위를 아우르고 있다.

지난달 31일 이청준 타계 2년을 맞아 그의 묘 앞에 '이청준문학자리'가 만들어졌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에서 그의 작품을 모아 '이청준전집'을 발간키로 하고 <병신과 머저리>, <매잡이> 두 권을 출판했다.

4.19 세대가 한국 현대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의식과 감각이 현재 우리 문학장에서 여전히 작동한다는 점에서, 그 한 축을 이룬 이청준은 오늘도 작가로서 살아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