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이대현 한국일보 논설위원, 아들 등 3명과 함께 펴내

온갖 종류의 영화평들이 인터넷에 난무하는 세상이다.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보고도 저마다의 시각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들을 쏟아낸다. 최근의 <아바타>나 <인셉션> 같이 분석의 여지가 많은 영화들엔 해설서마저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는 건 이제 난해하고 장황한 비평이 아니다. 명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해석이 빛나는 '영화 읽기'다. 영화 읽기는 이제 평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모든 사람들의 사유의 놀이터가 됐다.

영화평론가이자 한국일보 논설위원인 이대현이 아들 동륜과 김지은ㆍ한유경 등 고등학생 3명과 함께 펴낸 영화평론집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보다>(다할미디어)는 그런 영화 읽기의 변화상을 느끼게 해준다.

간결하고 예리한 이대현의 글이 길을 비추면, 아이들은 그 뒤를 따르면서도 자신들의 생각을 밝히며 길을 넓힌다. 비슷하면서 다른 두 가지 패턴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의 영화 읽기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대현과 다른 세 저자들의 시각차도 흥미롭다. 이대현은 평론가이자 언론인답게 시종일관 전문적이고 풍성한 인문사회학적 지식으로 영화를 정확하게 해체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직업의식을 발휘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다.

반면 아이들은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터미네이터 - 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이대현이 "인간의 조건은?"하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면, 이동륜은 "인간이 기계다"라고 선언해 버린다. 한유경은 <집행자>에서는 "나는 사형을 싫어한다"라는 단언으로 글을 시작하고, 긍정의 힘을 설파하는 <예스맨>의 메시지에 이대현이 점잖게 따라갈 때는 "'아니오'라고도 말해야 한다"며 날이 선 균형감각을 발휘한다. 이지은은 <워낭소리>에서 싸이월드와 트위터를 끄집어내 사이버 인간관계의 공허함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그렇다고 이들의 사유의 폭과 깊이가 전문가인 이대현의 수준에 비할 것은 아니다. 영화의 메시지가 분명하고 쉬운 경우엔 이들도 풍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지만,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에서는 생각을 정리하느라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의 영화 읽기가 대견해 보이는 것은 오히려 이 지점이다. 평론가 또는 선생님이 제시한 '모범답안' 대신 자신만의 고민과 사유로 의견을 도출해낼 때, 마침내 자신만의 시각이 발달하고 신념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생각이 깊고 넓어지는 이 과정은 4년째 계속되고 있다. 이 책은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해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이 읽고 있는 <14세 소년, 극장에 가다>와 그 후속작인 <15세 소년, 영화를 만나다>로 이어진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다.

<열일곱, 영화로 세상을 만나다>는 채윤희 여성영화인모임 대표의 추천사처럼 '영화를 통해 세상과 마주한 4년의 시간을 함께했던 '소년' '소녀'로서의 마지막 기록'이지만, 동시에 '청년'으로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다. 청년이 된 그들의 새로운 영화 읽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