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성찰과 상식없는 정치현실에 대한 반작용의 표출

올 여름 '정의'에 대한 책 한 권이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인문도서로서 이례적인 인기를 누려 화제다.

지난 5월 24일 출간 후 두 달 만에 25만부(7월 27일 기준)나 팔려 나갔고,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인터넷서점에서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인문도서가 베스트셀러 종합1위에 오른 것은 2002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놀라운 사건은 또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강연회를 가진 정치철학자 샌델 교수의 인기는 연예인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왜 우리 사회는 지금 정의라는 주제를 다룬 책에 그토록 열광하고 있을까?

상업지상주의 넘은 공공의 선에 대한 열망

자유시장은 공정한가? 정부는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는가? 개인의 권리와 공익은 상충하나? 민주사회에서는 정의와 부정,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다양한 주장과 이견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정치철학자인 샌델 교수는 책에서 고대부터 근현대 철학의 흐름 속에서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인 행복의 극대화, 자유, 미덕의 추구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이론들의 장단점을 실제 일어난 사건과 논쟁을 통해 살펴본다. 그리고 익히 들어온 논쟁인 '무엇이 옳고, 옳지 않은 일인가?'에 대한 의미를 고민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인터넷 서평가 이현우(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강사) 씨는 "외환위기 이후 공정한 사회나 도덕성처럼, 먹고 사는 일과 무관한 가치와 담론을 사치로 여겨오던 풍토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겠느냐"고 언급했다.

그는 최근 처세술을 다룬 책의 인기가 주춤하는 것도 이러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책에는 2008~2009년 일어난 미국 금융위기를 둘러싼 분노가 등장한다. 미국인은 구제금융으로 모두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경제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과, 잘못을 저지른 은행과 투자사에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불공정한 일이라는 사이에서 갈등했다. 저자는 과연 구제금융을 바라보는 이 같은 시각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2004년 태풍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생활재의 가격폭리처벌법에 대한 찬반논쟁도 있다. 대화와 용역을 판매하는 사람이 자연재해를 이용해 폭리를 취해도 괜찮은가? 가격폭리 금지가 구매자와 판매자의 자유로운 거래를 방해할지라도 정부는 가격폭리를 금지해야 할까?

샌델 교수는 사례로 든 사건과 논쟁에 대해 개인의 권리와 풍요로움을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 공동의 선과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의 미덕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사회에 팽배한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며,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시장의 자유에 대해 구조적인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성일권 발행인은 "이 책이 유럽이 아닌 미국과 한국에서 유독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사회복지를 외면한 채 기업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사회는 미국처럼 자유지상주의에 의한 경제논리가 지배적일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도 2007년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성공회대 사회학과 김동춘 교수의 책 <한국사회의 성찰>을 인용해 "한국사회는 기업적 가치의 지배를 받는 '기업사회'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한국사회의 성찰>에서 저자는 1997년 이후 기업은 단순히 사회의 일부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로 정의했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일으키는 반향은 정치·사회가 기업활동을 통제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에 봉사하고, 대기업이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영역까지 간섭하는 한국사회에서 기업의 논리를 넘은 정의가 가장 절실한 과제라는 점을 시사한다.

상식·평등과 거리 먼 현 정치현실도 한몫

정의의 또 다른 표현은 상식이다. 정의에 열광하는 분위기는 그만큼 우리사회가 상식을 갈구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경희대 영문학과 이택광 교수는 최근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간인 사찰이 버젓이 되풀이 되고, 4대강 사업문제를 다룬 방송이 금지위기를 맞는가 하면, 언론이 정부에 협력하는 등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지적했다.

또, 솔선수범해서 법을 지키고, 모범을 보여야 할 우파가 앞장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사회질서를 혼란 시키는 모습이 이 사회에서 너무도 흔하다. 이 교수는 책의 인기를 상식에 대한 갈증으로 바라본 것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장동진 교수도 최근 한국일보가 마련한 대담에서 지금의 우리 정치현실을 꼽았다. 장 교수는 현 정당정치에 국민들이 많은 회의를 느끼고, 불신이 팽배한 상황에서 '정의'라는 말이 우리사회의 어떤 결핍과 갈증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청년실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20대가 이 책에 주목한 것을 보면, 이들이 우리사회의 비전에 대해 뭔가 암울하다, 부당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해왔던 것 같다"며 "그 동안 민주화 운동으로 제도적 민주주의가 정착됐지만, 20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고 했다.

많은 시민들은 최근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다운계약서작성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불의를 저질러온 지도층의 모습에서 정의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