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노암 촘스키언어·정치·철학 등 다양한 주제 집필 활동

노암 촘스키는 비판적 지성의 대명사로 불린다. 특히 그는 한국인이 편애하는 지식인이다. 2000년 이후 국내 출판된 그의 서적만 20권이 넘는데, 이는 1000권만 팔려도 선방한다는 인문학 시장에서 그의 책이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기 때문이다. 2002년 나온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10만부 가까이 팔렸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비판적 지성, 좌파 미국인으로 각인되지만, 기실 그의 본령은 언어학이다. 그는 변형생성문법 이론을 창시, 현대 언어학에 혁명을 일으킨 학자다. 그 이름도 고전적인 '소쉬르' 이후 가장 중요한 언어학자로 꼽힌다. 출세작 <통사구조론>(Syntactic Structures)을 쓴 게 그의 나이 29세 때인 1957년이다.

이후 <통사이론의 양상>(Aspects of the Theory of Syntaxㆍ1965)을 썼다. 이 책은 '표준이론'(standard theory)이라 부르는 촘스키 초기언어학을 응집한 책이다. 이 책이 국내 번역된 1975년 이후, 한국에서 촘스키란 이름은 현대언어학의 최전선을 가리키게 된다.

흔히 촘스키 언어학을 '변형생성문법'(transformational generative grammar)이라고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구조(surface structure) 아래, 의미해석 정보를 지닌 또 다른 언어구조인 심층구조(deep structure)가 존재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언어를 인간이 보편적으로 타고난 능력의 결과로 간주하는 이론이다.

변형생성문법은 초기의 표준이론에서 확대표준이론(EST), 지배결속이론(GB), 최소주의프로그램(MP) 등으로 정교화하면서 한 세대 이상 세계 언어학계를 풍미했다. 촘스키를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은 이론(가)들도 촘스키를 준거로 삼은 다음에야 제 좌표를 확정할 수 있을 정도다.

다시, 우리에게 익숙한 촘스키의 '실천 지식인' 면모를 살펴보자. 38세에 일찌감치 MIT 석좌교수가 된 그는 196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기점으로 다양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방대한 저서를 썼다. 1969년 첫 정치서 <미국의 힘과 새 지배계급>(American Power and the New Mandarins)을 썼고, 3년 뒤인 1972년 두 번째 정치서 <아시아와 전쟁 중>(At War with Asia)을 썼다.

이후 <숙명의 트라이앵글-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Fateful triangle : the United States, Israel and the Palestinians>(1983), <여론조작―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 Manufacturing Consent: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Mass Media>(1988, 에드워드 허먼과의 공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What Uncle Sam Really Wants>(1996), <불량 국가 Rogue states>(2001) 등의 저작을 남겼다. 그가 언어학 이외에 정치학, 철학, 심리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쓴 책만 어림잡아 80 권이 넘는다.

그의 책이 국내 소비되는 양상은 1980년을 기점으로 달라진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촘스키의 한국인 독자는 주로 영어영문학과의 영어학 전공 대학원생들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 점차 언어학자보다 비판적 지성으로 각인됐고, YS의 '세계화 선언'을 기점으로 언어학 책보다 정치서가 더 많이 팔리기 시작한다.

2001년 9ㆍ11을 기점으로 그는 완연히 대중 지식인의 대명사로 떠오른다. 그는 9ㆍ11 테러 이후, 곧바로 미국 정부가 테러의 원인 제공을 했으므로 근본적 책임은 미국 정부에 있으며 테러를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킨다면 미국이야말로 테러집단이라고 주장한 <촘스키, 9ㆍ11>(2001)을 썼다.

'생존해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 '빌어먹을 촘스키'란 극단적 평가와 상관없이, 그는 특유의 독설로 여전히 정력적으로 책을 쓴다. 9ㆍ11 이 발발한 지 9년이 지났다. 그가 대중지식인, 이름만으로 팔리는 출판 브랜드가 되기 시작한 기점이기도 하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