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고본

갑작스레 너무 서늘해져 버렸다. 마음은 여름 꽃에 머물러 있었는데 갑자기 추워진 산에서 풀들이 어찌 어떻게 이 갑작스런 기온의 변화를 맞이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더욱이 서리가 내린 곳도 있다는데 높은 산의 높은 곳에 자라고 있는 식물들은 급격히 내려간 기온 속에서 잘 견디고 있는 것일까 걱정이 커진다. 고본도 그런 식물 중 하나이다. 늦은 여름에 피어 가을의 초입까지는 꽃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간 보았던 저 산들의 고본은 어찌 지낼까.

고본은 산형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산형과란 우산 모양의 꽃차례를 가진 특징이 있고 약용식물로 유명한 참당귀, 천궁, 강활 같은 종류가 모두 이 집안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작은 흰 꽃들이 우산살처럼 달린 꽃차례에 모여 달리고 이러한 작은 꽃차례들이 다시 조금 더 큰 우산살처럼 펼쳐진 꽃차례를 만들며 피어나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꽃만 보고는 구별이 매우 어렵지만 그래도 고본은 코스모스보다 더 잘게 갈라진 잎새를 가지고 있어 금세 구분이 간다. 깃꼴 모양이나 아주 가늘게 갈라지고 다시 갈라지고 다시 갈라지고를 3번 정도 반복하니 전체적으로는 아주 가늘게 갈라진 잎조각들이 가득히 보인다.

더욱이 이 풀들은 산의 높은 곳에서 무릎을 넘지 않는 적절한 키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포기를 만들어 자라니 이 서늘한 풀들이 자라는 곳을 간다면 다른 풀들과 섞여 모르고 지나칠 염려는 없다. 다만 발품을 팔아가며 높은 곳에 오를 의지는 있어야 한다. 산 밑에서 오가다 만날 수 있는 그런 풀은 아니니까 말이다.

고본은 사실 약용식물로 유명하다. 줄로 뿌리 부분을 쓰는 생약 이름도 고본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고본이라는 다소 독특한 이 이름은 식물체의 밑동이 벼가 마른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마를 고(藁), 뿌리 본(本)자를 써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니 이 풀을 만나거든 밑동도 한번 눈 여겨 볼 일이다. 약용식물이 많은 산형과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데다가 식물체 전체에서 특이한 향기가 있어(그야말로 허브식물이다) 절로 약용식물이려니 싶은 생각이 든다.

많은 증상에 대한 많은 처방이 알려져 있지만 주로 감기로 인한 두통, 발열, 가래, 콧물 등에 사용하며, 팔다리의 마비로 인한 관절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약으로는 주로 뿌리를 쓰는데 고르지 않게 갈라진 긴 원주형이고 뿌리 윗부분에는 줄기의 일부가 남아 있다.

약용으로의 쓰임새 이외에 관상용으로도 이용이 가능할 듯하다. 아주 화려하고 눈에 뜨이는 식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원의 한 켠을 차지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같은 사람이라도 느낌, 분위기와 품격 혹은 개성이 모두 다르듯 식물들도 저마다 다르다. 첫인상도 가지고 있고, 때론 깊이 사귀어 갈수록 정이 드는 식물을 만나기도 한다. 고본의 느낌은 다소 세상의 고뇌를 초월하여 다시 맑아진, 삶을 깊이 사색하여 주변에 절로 기품과 향기가 그윽해진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다. 그래서 이 복잡해지는 하루 하루에 저 산정 어딘가에 자라고 있을 고본이 문득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