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출간, 통섭적 지성 한껏 발휘

프랑스 지식사회에 문외한인 사람도 자크 아탈리의 이름은 한두 번 들어보았을 터다. 정치, 경제, 인문, 예술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와 방대한 저술로 '살아있는 프랑스 최고의 석학'으로 불린다.

이상하게 우리에게는 미래학자로 알려졌는데, 독창적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 저서와 강의 때문인 듯하다. 그가 낸 책이 얼추 50권에 달하긴 하지만, 문사철을 한데 모은 '통섭의 저서'가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600만 부 이상이나 팔렸다는 사실은 그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엘리트 고등교육기관인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공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또, 프랑스 최고지도자 양성소인 국립행정학교를 거쳐 소르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최고 학력을 싹쓸이 해 '학력으로만 대통령을 뽑는다면 아탈리가 1등'이란 우스갯소리도 나돈다. 직업도 학계와 정계, 국제기구를 넘나들었다. 1974년에는 프랑수와 미테랑 사회당 당수의 경제고문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1981년 사회당이 집권하면서 10년간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는데, 이때 '미테랑의 휴대용 컴퓨터'란 별명을 얻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초대 총재를 지냈다. 이때 생긴 별명은 '미스터 유로뱅크'다. 프랑스 정부 국정 자문역, 컨설팅 업체 '아탈리 아소시에(A&A)' 대표, 빈민구제 국제기구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으로 있다.

그의 약력을 정리할 때, 저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치, 경제에 관한 책은 물론이고 소설, 희곡, 에세이까지 다방면의 저서를 거의 매년마다 선보인다.

그가 쓴 저작에 계보를 그린다면 우선 경제·경영인들이 바이블로 삼는 책이 있다.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미래의 물결>, <위기 그리고 그 이후>, <살아남기 위하여> 등이 이에 속한다. 정치인들이 참조하는 <인간적인 길> 같은 책도 한 축을 이룬다. <합리적인 미치광이>처럼 철학자들이 보는 책도 있다. <마르크스 평전>, <미테랑 평전> 등 평전을 쓰기도 했다.

저서에서 대표적인 개념어 두 개를 소개한다. 우선 '트랜스 휴먼'이란 말이다. 아탈리는 동시대인과 그 후손의 운명에 대해 깊은 이해심을 갖고 고심하는 이타적인 시민을 트랜스 휴먼이라 부른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 시장경제의 문제들이 해소될 수 있고 민주주의의 지속이 가능해진다. 아탈리 자신이 바로 트랜스 휴먼인 셈.

그가 만든 가장 유명한 개념어는 '디지털 노마드족(nomad族)'이다. 국경이나 민족을 초월해서 전 세계를 무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디지털 혁명이 만들어낸 새로운 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아탈리는 미래 역사의 주인공을 디지털 노마드족이라 했다. (그는 지난 2007년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2050년이 되면 한국이 바로 그런 국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해 우리를 한껏 고무시켰다.)

얼마 전 그가 쓴 소설이 출간돼 화제가 됐다.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다. '아탈리가 소설까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는 <복제인간의 사랑을 위하여> 등 단편 소설을 냈을 만큼 문학적 재능도 갖춘 저자다. 소설 <영원한 삶>으로 1990년 프랑스문학가협회상을 받았는데, 이 작품은 1995년 국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최근 출간된 <깨어있는 자들의 나라>는 그 통섭적 지성이 한껏 발휘된 작품이다. 이슬람 시대 스페인에 관한 이야기로,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실존했던 이들을 역사적 상상력으로 되살려낸다.

중세를 대표하는 두 현자,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와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모세 벤 마이문)를 주인공으로 이들의 만남과 고대의 지혜서를 찾아가는 순례의 여정, 두 현자가 추구한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