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움베르토 에코'문사철' 모든 영역 아우르는 저서… 신간 출간

'움베르토 에코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는 없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발간한 <2010 도서목록>에서 적힌 작가의 소개, 첫 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기호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그리고 소설가. 아퀴나스의 철학부터 컴퓨터 공학까지 그의 지적 촉수가 닿지 않은 분야는 없다.

1932년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 뜻에 따라 대학에 입학했지만,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 논문을 통해 그는 문학비평과 기호학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됐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을,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다. 1968년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를 발간했는데 이 책으로 세계적인 기호학자 반열에 올랐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일반 기호학 이론>, <논문 잘 쓰는 방법>처럼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멍해지는 이론서부터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해석과 한계>, <미의 역사>, <추의 역사>등 비평서까지 에코 저서의 스펙트럼은 '문사철(文史哲)이 커버할 수 있는 도서 범위까지다. 한마디로 그의 책은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그가 기호학·철학·미학의 대가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대중은 그의 기호학 강의나 미학이론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러니 그가 이름만으로도 출판시장을 움직이는 브랜드 저자가 된 것은 첫 소설 <장미의 이름>(1980)을 발간하면서부터였을 게다.

현대 사회의 세기말적 위기를 소설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에코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로부터 추리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고 집필에 들어가 2년 반 만에 그 소설을 썼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고 지금까지 2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를 발표해 독자들의 찬사와 교황청의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이 작품은 그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전날의 섬>, <바우돌리노>,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등 백과사전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에코의 소설은 특유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최근 그의 신작 <궁극의 리스트>가 출간됐다. 아쉽지만 소설은 아니다. 부제는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까지 서양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인류 문화사에 등장하는 여러 목록의 예를 살펴본다.

호메로스, 단테, 괴테, 조이스, 프루스트 등 대문호들의 작품 80여 종과 195종의 삽화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어우러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목록들이 어떻게 시대를 담고 있는지 분석한다. 고대인들은 우주처럼 한계가 없는 대상을 마주쳤을 때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대상의 속성을 무한히 나열했다. 중세 목록은 신이 많은 부분을 채우고 있으며, 근대로 접어들면서 각종 목록은 자본과 연결된다.

에코의 목록은 기본적으로 끝없이 나열되는 무한한 속성을 가진다. 이는 곧 유한성의 한계 속에서도 무한성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한다. 목록이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시기마다 목록이 나타내는 시대정신은 어떤 것인지 저자는 단문의 '팩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