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대추나무

아파트 현관을 나서면 한 켠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꽃이 피더니 열매가 열리고 파랗던 열매는 이제 제법 밤색으로 아니 대추색으로 한창 보기가 좋다. 그리고 그렇게 익어가는 대추나무를 바라보면 일을 나서는 마음도 덩달아 풍요로워지곤 한다.

어느 날 퇴근을 해보니 식탁 위에 반질반질 싱싱한 대추 몇 알이 놓여있다. 알고 보니 경비아저씨가 손에 닿는 대추를 따서 집집마다 나누어주셨단다. 다 함께 보자고 수목원에 심겨 놓은 과실나무도 혼자 욕심 내어 익기도 전에 사라지곤 하는데, 우리 아파트 대추나무는 이웃들이 다 함께 볼 수 있고 그 결실의 일부를 나누는 이웃 모두의 나무가 되어 얼마나 흐뭇하던지.

대추나무는 갈매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키가 5m 안팎까지밖에 못 자란다. 사실 우리가 키우는 대추나무의 원조가 되는 것은 묏대추이다. 대추나무는 묏대추를 기본종으로 하는 하나의 변종으로 대추나무의 열매 대추가 길쭉하다면 묏대추의 열매는 구슬처럼 둥글다. 그 이외의 특성은 거의 똑같다.

대추나무에는 가시가 있다. 잎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잎겨드랑이에 생기는 3cm 정도의 가시는 제법 사납다. 잎 아래 부분에 있는 탁엽이 변해서 가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일이 복잡하게 되어 갈 때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나온 것은 아마도 대추나무의 가시 때문일 것이다. 잘 날던 연들이 번번이 이 가시에 걸려 매달려 있었을 터이니까. 대추나무는 한자로 '조(棗)'를 쓰는데 두 글자를 옆으로 놓으면 가시 '극(棘)'자가 되는 것은 재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산 대추나무는 우리네 심성이 그러하듯 다른 지역의 대추나무보다는 가시가 덜 극성스럽다.

실제로 이시진의 기록에는 산에서 나는 대추나무는 극(棘)자를 써서 나타내기도 하는데 그 이유가 재배하는 대추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므로 두 글자를 위로 올려 놓아야 하지만, 산에서 야생하는 것은 키가 작은 관목상으로 자라므로 두 글자를 옆으로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보다 옛 사람들의 융통성과 상상력이 훨씬 앞선다.

이러한 대추나무 가지에 싹이 트는 것은 몹시 늦은 봄이나 초여름이다. 성급한 다른 모든 나무들이 잎을 내고 꽃을 피워내고 있는 동안에도 마치 죽어 있는 듯 침묵하며 애를 태우다가는 어느 날 문득 초록빛 새순이 터져 나온다. 그래서 이렇게 늦장을 부리는 대추나무를 두고 양반나무라고도 불렀다.

늘어지는 듯 느껴지는 가지를 사이에 두고 타원형의 앙증스런 잎새들은 서로 어긋나게 달린다. 가운데 중심 되는 맥을 두고 세 개의 맥이 양쪽으로 이어지며 생겨 특색 있는 모습이다. 새로 난 잎이 미처 다 짙푸르러지기도 전에 잎 사이사이에서 꽃이 달린다.

잎보다 연한 황록색의 작은 꽃은 색과 모양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벌들은 잘도 알고 찾아 온다. 가을에 푸른색에서 점차 붉은 갈색으로 대추는 익어 가는데 추석을 즈음해서는 파랗기도 누렇기도 한 얼룩이 남아 있다.

대추나무는 마치 약방의 감초처럼 많은 보약에 들어 가고 많은 음식의 일부가 된다. 물론 아삭이는 생대추의 맛도 좋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대추를 먹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기록은 명확치 않으나 대략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과일 또는 약재는 물론 흉년이 들 때는 구황식품, 전쟁이 있을 때에는 군량으로, 또 목재가 치밀하므로 인쇄용 판자로 쓰기도 했다.

집 부근 논두렁에 많이 심어 바람과 수해를 막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등 대추나무는 정말 두루두루 이용되어 왔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집 앞에서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며 그렇게 서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