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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시의 상징적 존재

[이 장르 이 저자] 최승자 시인
6번째 시집으로 지리산문학상ㆍ대산문학상 수상
'최승자를 생각하지 않고 한국의 여성시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인 최승자를 소개할 때 흔히 이런 말이 붙는다. 기실 한국의 여성시 계보를 둘로 나눌 때,(속된 말로 '마녀'와 '미친년') 최승자는 그 한 쪽을 상징하는 존재다.

재작년 한 시사주간지가 선정한 '올해의 시집'(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에 실린 시인의 말-우리들의 시인 최승자를 위해-이라든지, 역시 주목받는 여성 시인(김민정)이 인터뷰 때 "최승자 시집에서 영향을 받았다"란 말을 빼놓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80-90년대 시단의 한 축을 상징했던 그녀가 단 한 번도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한국문학사의 아이러니로 회자될 정도다.

흔히 최승자의 시를 전통적 여성시의 곱고 여린 감수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한다. 과감하게 단언하고, 잔인하게 폭로한다. 이는 남성중심적 상징질서로 규정된 '여성적 감수성'으로부터 탈출을 의미한다.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위악과 피학증, 자기모멸과 거침없이 비속한 언어의 사용은 단지 해방의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첫 시집 <이 시대의 사랑>(1981)에서는 이 시대가 파괴해 버린 삶의 의미를 천착하면서 그것의 가치를 향해 절망적인 호소를 하고 있다. 이 호소는 여성이기에 앞서 인간으로서의 사랑과 자유로움을 위한 언어적 결단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집 중 가장 많이 사랑받는 것은 두 번째 시집 <즐거운 일기>(1984)다.

이 시집에서 그녀는 극한의 상황에 이르러 역설적으로 찬란히 빛을 발하는 삶의 비극성을 그려낸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세 번째 시집 <기억의 집>에서는 '시를 씀으로써 시를 극복한다'는 또 하나의 역설적 전략을 만들어 낸다.

1999년 <연인들>을 내고 그녀는 시집을 내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얼마 전 인터뷰에서 "<내 무덤, 푸르고>(1993)를 내고 너무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한 가지 생각에 몰두하면 밥도 잠도 멀리한 시인이다. 그동안 그녀는 집과 병원을 오가며 살았다.

"당시 영양학, 식이요법 등에서 시작한 지적 호기심이 사상의학, 음양오행 관련 서적, 점성술 등 신비주의로 옮아갔다. 너무 심취하다 보니 정신분열증이 왔다."

긴 침묵을 깨고 올해 여섯 번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을 냈다. 이전 시풍에서 크게 변한 모양새다. 노자, 장자는 물론 길가메시 서사시 같은 근동 설화, 융의 집단 무의식 이야기도 나온다. 무엇보다 극도의 강렬함, 비관적 시선이 없다.

'오랜만에 시집을 펴낸다/ 오랫동안 아팠다/ 이제 비로소 깨어나는 기분이다'

시집 앞머리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 그 어떤 수사보다 울림이 담긴 말이다. 그리고 이 시집으로 두 개의 문학상을 받았다. 8월에 받은 지리산문학상과 지난주 수상한 대산문학상이다. 이와 동시에 '문학사 최대 아이러니'도 없어졌다.

대산문학상 운영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 시집을 시 부분 수상작으로 정했다. 심사위원단은 "혼란스럽고 산만한 정제되지 않은 다변의 범람 중에 최승자 시인의 <쓸쓸해서 머나먼>은 그 간결성과 간절함이 단연 돋보인다는 평이었고 그러한 간결성은 자기억제력에서 나오는 것인데 요즈음의 시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빛나는 것"이라고 평했다.

시인의 수상 소감은 단정했다.

"큰 상을 받게 돼 고맙다. 요즘 시들이 너무 다변화돼 언어만 날뛰는데, 말이 아닌 시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심사위원들께서도 그런 생각을 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임'. 감동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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