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단풍나무

이미 가을이 깊을 만큼 깊었다. 이곳저곳에서 눈 소식도 들리지만 아직 겨울이고 싶지는 않다. 아직 변화무쌍한 날씨의 변덕으로 제대로 단풍조차 들지 못한 나무들이 여럿이다.

식물학자란 자연 속에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지고 단풍이 들고 이내 낙엽이 지는 변화들을 가장 밀접하게 알게 되는 직업이어서 미처 길을 떠나지 못하고 책상머리에 앉아서도 지금쯤 어딘가에서 어떤 나무와 풀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그 아름다운 혹은 쓸쓸한 풍광들이 펼져지곤 하는데 올해는 그 예측이 아주 어려워졌다.

이 가을 단풍만 해도 그렇다. 충분하게 비가 오고 갑자기 서늘하게 가을이 다가서기에 올 단풍은 예년보다 조금 빠르고 그리고 아주 선명하고 멋지게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지않은 눈앞에 단풍이 절정이겠구나 생각한 즈음, 갑자기 몰아 닥친 한파에 잎들은 물들기 전에 녹아버렸고, 얼었던 잎들은 그대로 말라 버렸다. 허전하고 섭섭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겨울을 준비하는 마지막 슬픈 절정 같은 단풍을 그냥 보낸 것이.

요 며칠 기온이 다시 떨어지고 문득 가을의 색깔이 아주 깊어졌다. 수많은 나무들이 제각기 갖는 단풍빛이 있지만 단연 단풍빛이 빼어난 것은 단풍나무이다.

대부분 잎이 손바닥처럼 절절히 갈라지고 날개 달린 열매를 가지며 붉은 단풍이 드는 것을 통틀어 단풍나무라고 하지만, 우리가 정확히 단풍나무라고 딱 꼬집어 부를 수 있는 진짜 그냥 단풍나무는 따로 있다. 잎이 7장, 더러 5장으로 갈라진 것이 바로 단풍나무이다. 자연적인 분포로는 남부지방에 분포한다.

한라산에 한창 고울 그 나무는 아마도 단풍나무일 것이다. 만일 중부지방의 북한산이나 설악산을 가다가 단풍나무를 보았다면 잎이 몇 갈래로 갈라졌나 헤아려 보자. 9~11갈래일 것이다. 이 나무들은 엄격하게 단풍나무 집안이긴 하지만 단풍나무는 아니고 당단풍나무이다.

물론 단풍나무를 중부지방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산에서 절로 자라는 분포가 남부지방이긴 하지만 정원이나 공원에 심는 나무들은 대부분 단풍나무가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단풍나무 구경이 가능하다.

단풍나무는 색깔의 변이를 갖고 이런저런 조경수 품종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일년 내내 붉은 빛인 단풍나무, 봄에 순이 날 때 잠깐 붉은 단풍나무, 잎이 아주 잘게 갈라진 단풍나무, 갈라진 잎이 축축 늘어져 달리는 나무 등등이 있다.

단풍나무는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이다. 물론 꽃도 핀다. 꽃은 부채살처럼 갈라지는 자루에 달리는데 작아서 꽃이 필 즈음에는 그리 관심을 끌지는 못한다. 그러나 두 장의 날개가 일정한 각도를 이루며 마주 달리고 프로펠러처럼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단풍나무 열매는 단풍나무 종류면 어떤 것이든 갖는 특색이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단풍나무가 자라는데 이 단풍나무 열매의 날개 두 장이 만드는 각도에 따라 단풍나무 종류를 구별하기도 한다.

가을마다 온 산을, 온 마음을 술렁이게 하는 단풍은 왜 드는 것일까? 물론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는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단풍이 드는 것은 서리가 내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단풍의 붉은 색소가 최고로 나타나기 전에 서리가 내린다면 잎이 빨리 죽거나 손상되므로 오히려 그 화려함에 흠이 갈 수 있다.

단풍이 드는 것은 광합성을 하여 양분을 만드는 잎을 포기하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이 초록빛 색소에 가려 발현되지 못하던 붉은 색소인 화청소가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단풍으로 맺음하는 나무들의 장렬한 최후는 사실은 내년 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기다림의 시작일 뿐임을 기억하자 .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