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조르조 아감벤최근 '호모 사케르' 연작 번역되면서 국내서도 관심 집중

1980년대 국내 '문사철'을 장악한 저자가 루카치였다면, 90년대 인물은 라캉과 들뢰즈였을 것이다. 2000년대 그런 저자 중 하나가 조르조 아감벤이다.

최근 2~3년간 국내에서 집중 논의된 자크 랑시에르를 비롯해 알랭 바디우, 가라타니 고진 등은 모두 1960년대부터 활동한 이른바 '68세대' 저자들이지만, 90년대 라캉과 들뢰즈의 책이 국내 문화예술계에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제야 소개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은 현재 유럽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장-뤽 낭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철학자의 말을 토대로 독창적인 사유를 펼친다. 지난해 베네치아건축대학에서 은퇴한 그는 현재 '호모 사케르'연작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국내 알려진 것은 이 '호모 사케르'연작이 몇 년 전부터 집중 번역되면서부터다.

저자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길 좋아하는데, 아감벤의 대표 키워드는 '예외상태'와 '호모 사케르'다. 호모 사케르 연작의 1권인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그는 주권권력이 법질서를 스스로 중단하고 예외상태(추방, 수용소)를 만듦으로써 벌거벗은 생명을 산출했다고 말한다.

얼핏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겠지만, 우리의 70년대 긴급조치법을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듯하다. 9·11사태 이후 미국에서 애국자법이 시행되고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관타나모 수용소에 강제 구금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그의 책이 '세계를 설명하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인정받게 됐다.

호모 사케르란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자들, 정치-사법 영역에서 배제된 자들과 다름없는 존재들이다. 아감벤은 책에서 수용소 수감자들, 생물학적으로만 살아있는 뇌사자들, 인간 모르모트, 국적을 상실한 난민들을 호모 사케르의 사례로 들고 있다.

이 연작은 지금까지 <주권권력과 벌거벗은 생명>(1권 1995), <예외상태>(2-1권 2003), <군림과 영광>(2-2권 2007), <언어활동과 성사>(2-3권 2008), <아우슈비츠에서 남은 것>(3권 1998)까지 출간됐다. 아감벤은 '삶의 규칙', '내전', '삶-의-형태' 등을 주제로 나머지 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에 호모 사케르 연작 시리즈의 예고편인 <목적 없는 수단>(1996)이 번역 출간된 바 있다.

다시, 그의 '백그라운드'로 돌아가자. 1965년 시몬느 베이유의 정치사상 연구로 로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감벤은 1966년과 1968년 '르 토르' 세미나에 참여해 마르틴 하이데거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1974년~75년 영국 바르부르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1979년부터 발터 벤야민 이탈리아어판 전집 편집자로 일하며 하이데거와 비판적 거리를 둔다. 이후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안토니오 네그리 등과 교류하며 독창적 사유를 키웠다. 그의 말과 글은 이런 배경에서 해석돼야 한다.

독자들이 '철학'하면 형이상학적 단어가 떠올라 지레 겁을 먹지만, 앞서 본 9·11테러나 글로벌기업 등 매스미디어에서 매일 보는 일들을 해석하는 힘을 길러주는 책이 바로 정치철학서다.

물론 인문학 서적을 오랫동안 '끊어 온' 독자들은 제대로 집중해 읽기까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최근 각광받는 해외 석학 8명의 책을 요약해 저술한 <현대정치철학의 모험>(난장 펴냄)을 비롯한 일련의 책들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예외상태> 등 대표작을 읽는 게 정석이다. 얼마 전 종교에 관한 근대 세속화 논의를 아감벤 특유의 관점으로 제시한 <세속화 예찬>이 국내 번역 출간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