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은대난초

날씨가 정말 '쨍' 한 겨울 날씨답더니 눈이 푸근하게 내렸다. 춥고 거친 날씨에 발을 동동 구르지만, 숲 속의 생명들은 이 추위와 눈을 견디며, 추려지고 걸러지고를 거듭하며 이내 강건해질 것이다.

이 모든 어려움이 지나고 다가설 찬란한 새 봄을 기다리고 있을 풀들, 나무들, 야생의 식물들을 생각한다. 이들이 펼쳐낼 잎과 피어날 꽃들이 아무리 여리고 보드라워도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매서운 겨울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파에 시달리며 나날이 굳어가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혹독함을 견디고 새 봄에 여린 순과 순결한 꽃을 피우는 풀과 나무들은 위대한 존재인 것 같다.

도 그러한 풀들의 하나이다. 한 뼘쯤 지상으로 올려 보낸 줄기에는 부드러운 초록빛과 그 빛깔만큼 보드라운 잎새를 달고 청초하고 순결한 백색의 작은 꽃들을 피워낸다, 이 의 꽃들은 다 피어도 다 피지 않은 듯, 꽃잎들을 활짝 펼쳐내지 않는다.

수줍은 듯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 감추어진 아름다움이 이 꽃을 더욱 곱게 만든다. 야생의 난초이며 그 고결함이 자만스럽지 않아 더욱 좋다.

은대난초
는 나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그리 깊지 않은 숲 속, 나무 그늘 밑에서 정말 불현듯 만날 수 있다. 마치 이 가 그 자리에 자리잡은 것이 우연인 듯 특별히 예상하기 어려운 그런 장소에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때론 사람들이 를 은난초라고도 하는데 두 식물은 아주 비슷하지만 서로 전혀 다른 종이다. 는 꽃차례 아래쪽에 달려 꽃들을 받치고 있는 포가 꽃보다 더 길게 자라 눈으로 금세 구별이 가능하다.

잎 뒷면과 꽃차례에 백색의 돌기가 있어 만져보는 것으로도 구분할 수 있다. 댓잎은난초라고도 한다. 잎의 모양이나 포의 모양이 작긴 하지만 길쭉하여 대나무 잎과 비슷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보기에도 아까워서 그런지, 흔히 야생의 식물에 따라붙는 식용이니 약용이니 하는 기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관상용으로 키우려면 나무 아래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만들거나 작은 분에 담아 키울 수 있을 터인데, 곁에 그리 두고 보면 좋겠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아름답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고운 야생의 난초들에 대한 개인의 욕심들이 비정상적으로 커져서 자생지에서 난초들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이 땅에는 아름다운 자생난들이 많이 있다. 너무 유명해서 자생지에서 멸절해버린 풍난이나 나도풍난, 혹은 한란이 아니더라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석곡이나 지네발란, 이미 유명해져 보편적인 상품이 되어 버린 자란이나 새우난, 보춘화 말고도 이 땅에는 처럼 청초한 야생의 난들이 지천이다.

주변에 알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건, 그것들이 훼손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때론 행동하지 않고 마음으로만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