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르 이저자] 칼 폴라니, 주류 경제학자들의 통념 뒤집어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20만 부를 넘겼다고 한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쓴 책이라고는 하지만, '본격 경제서'가 이만큼 주목받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덕분에 그와 비슷한 스펙트럼의 저자, 칼 폴라니의 국내 주가(?)도 뛰었다.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년 헝가리에서 태어나 1964년 미국에서 사망한 정치경제학자. 시장 만능주의와 경제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인간에 관심을 둔 경제학, '경제인류학(economic anthology)'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에서 태어나 양차대전을 겪으며 세 차례 망명 끝에 미국에 자리를 잡았다. 오스트리아에 머물 당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 버금가는 경제잡지 <오스트리아 경제>에서 국제경제 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린 적도 있다.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건 1944년 출간한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의 영향이 크다.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면서 폴라니는 영국으로 망명한다.

여기서 영국자본주의의 실상을 관찰하며 시장경제 출현이 가져다 준 인류사적 충격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1935년 <파시즘의 본질>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후 그는 이 책을 썼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와 3부에서는 1차 대전, 세계 대공황, 유럽 대륙의 파시즘 발흥, 미국의 뉴딜정책, 소련의 경제개발계획 등 19~20세기 서구 경제정세를 설명한다. 핵심은 2부다. 그는 2부에서 주류경제학자들의 통념을 뒤집는다.

어떻게? 자유로운 시장경제란 실상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시장 스스로의 조정으로 재화의 생산과 분배의 질서를 유지하는 '자기조정 시장경제'는 도달할 수 없는 적나라한 유토피아"라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자유시장경제주의자들이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뻥이라는 말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16세기 이후 절대주의 국가들의 모델을 제시한다. 오늘날 시장과 비슷한 전국적 시장의 탄생이 이때부터이기 때문이다. 당시 중상주의를 신봉한 국가들은 세수를 늘리기 위해 길드의 폐쇄성을 깨고 보편적 시장 창출에 앞장섰다.

요컨대 오늘날과 같은 '자유 시장'은 국가 개입의 결과라는 말이다. 장하준에 심취했던 국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칼 폴라니 책을 집어 드는 것은 이런 공통점에서 비롯된다.

통상 경제학자들이 경제란 틀 속에 국가와 사회를 하나의 변수로 집어 넣었다면, 칼 폴라니는 사회를 거대한 필드로 설정하고 국가와 경제를 변수로 가정한다. (국민국가는 근대의 출현으로, 시장경제는 앞서 본 중상주의 출현 이후 만들어졌다.)

때문에 그가 제시하는 처방책도 마르크스나 케인스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제 생산양식 타도를, 케인스가 적절한 국가 개입을 외쳤다면, 폴라니는 '사회'란 실체를 발견하며 좀 더 복잡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왈, 국가와 사회가 시장에 복속되면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 때문에 시장을 사회 아래에 두고 인간적 가치와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 그의 글은 이성적이면서도 또한 감성적이다.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아니라 만유인력에도 불구하고 새가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는 것.'

이런 시 같은 문구들이 그의 글 곳곳에 숨어있다.

그의 책 <거대한 전환>은 국내 진보학자들에게 경제학 바이블로 읽혔지만,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지금은 이념 스펙트럼을 초월해 유행처럼 읽히고 있다. 2009년 홍기빈의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