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르 이저자] 칼 야스퍼스 출간… 정신분석적 통찰 보여주는 강연ㆍ논문 모아

막스 베버를 존경했고, 후설을 비롯한 세기의 지성과 오랫동안 교류했으며, 한나 아렌트의 스승이었다. 심리학과 철학을 두루 섭렵해 두 영역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이 두 전공을 살려 프로이트 학파를 '철학적 논증'으로 비판한 바 있다. 칼 야스퍼스에 관한 간단한 이력이다.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철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혹자는 야스퍼스의 삶과 저작을 니체의 그것과 비교하는데, 개인적 히스토리와 책의 상관관계가 그 만큼 유사하다는 의미다. 야스퍼스의 삶에는 4가지 극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건을 토대로 보면 그의 저작에 일정한 포물선이 그려진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앓아온 기관지 확장증이다. 그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병약했는데, 때문에 정신의학자로 임상의보다 연구자의 길을 택했다. 질병과 신체적 제약으로 우울증에 시달린 그는 '절친' 하이데거와 달리, 한나 아렌트 등 소수의 제자만을 키웠다.

두 번째는, 의대 친구인 에른스트 마이어를 통해 알게 된 네 살 연상의 누나 게르트루트 마이어와의 교제에서 체험한 '실존적 소통'이다. 야스퍼스는 그녀를 알면서 고독, 우울, 자의식 등 모든 면에서 변화를 맞았다.

한마디로 사랑에 빠지면서 이 모든 증상이 완화된 것이다. 둘은 부부가 됐다. 세 번째는, 동생 에노의 자살이다. 그의 대표 저서 <철학>에서 한계상황이나 죽음, 투쟁, 죄책감과 자살의 문제를 다룬 것은 이런 체험의 반영으로 해석된다. 마지막으로 나치 시절에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출판을 금지당한 일이다. 유대인 아내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야스퍼스는 이런 체험들 속에서 저서를 집필한다. 정신병리학에서 시작한 그의 책은 철학으로 종지부를 찍고 있다. 1913년 <정신병리학 총론 Allgemeine Psychopathologie>을 썼고, 하이델베르크 대학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관의 심리학 Psychologie der Weltanschauungen>을 출간했고, 이때부터 심리학에서 철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1921년 철학 교수로 전임한 뒤에 칸트, 키르케고르, 니체의 철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32년 <철학 Philosophie>(3권)을 내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서구사회가 제기하는 기계문명, 대중사회, 정치상황,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가치전환적인 사상적 위기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준다.

유명 저자들은 자신들의 개념어를 만들기 좋아한다. 야스퍼스의 대표 개념어를 꼽으라면 '한계상황'과 '암호읽기(Chiffrelesen)'다.

야스퍼스는 자연이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참된 지식이 아니라, 단지 '존재에 대한 암호'에 불과하고, 이 암호를 바르게 읽음으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비합리성을 이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철학의 역할은 이 '암호읽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암호를 읽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일상의 경험에서 벗어나 '한계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한계상황이란 실존이 피할 수 없는 고뇌, 죄악, 죽음, 투쟁, 생존의 의혹 등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철학만큼이나 그렇게 인기 있는 저자는 아니지만, 심리학과 의학, 철학을 두루 섭렵하고 싶다는 야심을 가진 독자라면 도전해볼 만한 저자다.

최근 그의 저서 <기술시대의 의사>(책세상>이 번역, 출간됐다. 야스퍼스의 정신분석적 통찰을 보여주는 강연과 논문 5편을 모은 책이다. 정신의학, 정신분석, 심리치료, 철학 등 다양한 영역을 관통하며 현대 의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통섭적 사유로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