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후피향나무

후피향나무꽃
한번 내려간 기온이 올라갈 줄을 모른다. 정말 매서운 겨울이다. 인공위성으로 한반도를 내려다 보면 온통 하얀색이라고 한다. 눈덮인 산, 얼어붙은 강이다. 그나마 실내에 들어오면 싱그러운 초록잎을 반짝이고 있는 관엽식물들이 생기를 주는 듯하여 고맙다.

생각해 보면 주변에 있는 관엽식물들은 대부분 열대지방에서 날아온 타국의 나무들인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벤자민 고무나무를 비롯하여 고무나무, 산세베리아, 관음죽… .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자생식물 중에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나무들은 없을까?

난대림에 살아가는 여러 나무가 있지만 후피향나무도 관심을 가질 만한 나무이다. 후피향나무, 이름도 예쁘다. 두터운 수피에서 향이 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꽃도 아니고 수피에서 향이 난다니 왠지 마음이 더 쏠린다.

후피향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중간키나무이다. 작지도, 크게 자라지도 않아 적절하다.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와 남부지방 해안가에서 더러 만날 수 있는데 제주도에선 한라산 700m까지도 올라가 살고 있다.

꽃은 한여름에 핀다. 아주 크고 풍성하진 않지만 같은 집안식물인 차나무 꽃이나 동백나무 꽃들이 아름답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꽃도 그 모습이 고울 것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잎겨드랑이에 달려 꽃자루가 밑으로 처지듯 다소 아래를 향해 핀다. 흰색의 꽃이 피어 노란색으로 변해가면서 서서히 진다. 그 색깔의 변화를 구경하며 개화의 진행속도를 짐작하는 것도 재미있다.

후피향나무수형
잎은 상록의 넓은잎 나무이므로 두껍고 질기고 반질거린다. 원래는 어긋나게 달리지만 가지 끝에서는 모여 달린 듯 보인다. 손가락 하나 길이 정도의 길쭉한 타원형이다. 때론 잎이 진한 자줏빛이 돌 정도로 변하기도 해서 색깔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초록색이 변하는 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색이 깊어지고 붉어져 변화를 주는 것도 이 나무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열매는 이 나무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크리스마스 트리에 붉은 방울을 매어 달듯 구슬 같은 열매가 달려 붉게 익는다. 이 붉은빛도 자주색이 도는 독특한 느낌의 색깔이다. 열매는 오래도록 매어 달리다 과육이 터져 벌어지고 두터운 과육 속에는 주홍빛 껍질을 한 종자가 드러나서 열매 역시 다시 한번 변신을 하는 셈이다.

쓰임새로 치면 향기가 있다는 수피는 염료로 쓰인다고 한다. 그윽한 다갈색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목재는 단단하여 작은 가구나 기구를 만드는 데 요긴하다고 하지만 목재로 쓰기에 너무 귀한 생각이 든다.

관상수로서는 이미 이름이 높다. '정원의 왕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중부지방에서는 실외에서 겨울을 나기 어렵고, 나무가 자라는 속도가 아주 더뎌 빨리 키울 수 없다는 점 등이 단점이다. 이러한 단점은 화분에 키워 실내에서 키우는 나무로 이용하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가지를 자르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천천히 아름다운 수형을 잡아가면서 커간다. 대기만성이라고 할까. 두고두고 새록새록 이 나무의 멋스러움에 빠져볼 만하다.


후피향나무열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