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 특유의 변증법적 화술 바탕 다양한 성찰 보여줘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현우, 김희진, 정일권 옮김/ 난장이 펴냄/ 1만 5000원

MTV철학자,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철학자. 지젝에 붙은 이 수식어들은 현재 그의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19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통해 영어권 지식사회에 등장한 이후 6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줄기차게 써왔고 지금도 한 해 2,3권씩의 책을 쓴다.

그 입담의 원천은 가장 난해한 사상가, 헤겔과 라캉이다. 그는 헤겔을 통해 라캉의 사유를 읽고, 다시 라캉 언어로 헤겔의 사상을 설명한다. 여기에 마르크스와 대중문화가 이론적 틀로 더해진다.

팝음악, 할리우드 영화, 오페라는 그가 자주 인용하는 사례들이다. '마돈나가 싱글 앨범 내듯' 정력적으로 책을 내는데다, 대중문화를 통한 설명 덕분에 지젝은 2000년대 가장 대중적인 사상가 중 하나가 됐다.

신간 <폭력이란 무엇인가>는 지젝의 이론적 사유를 바탕으로 폭력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펼쳐놓은 책이다. 저자는 폭력의 개념을 몇 가지로 나눈다.

우선 주관적 폭력, 객관적 폭력이다. 가해의 의미로 쓰이는 일반적 폭력을 '주관적 폭력'이라 칭하고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을 '객관적 폭력'이라 칭한다. 객관적 폭력은 다시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 폭력'과 경제정치 체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구조적 폭력'으로 나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폭력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의 상투적 이미지에 한걸음 물러날 때만, 인간은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 성찰할 수 있다는 것.

책은 총 6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1장에서는 주관적 폭력과 객관적 폭력의 차이를 설명한다. 2장에서는 폭력의 궁극적 원인이 공포에 있다고, 이웃에 대한 두려움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 공포가 언어 자체에 내재된 폭력의 기초를 이룬다.

3장에서는 테러리즘이 가진 원한이란 감정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정의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원한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제거할 수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쏟아붓는 도착이다.

4장에서는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에 대해, 5장에서는 사회 지배 이데올로기서의 관용의 한계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발터 벤야민의 신적 폭력 개념이 가진 해방적 면모를 설명한다.

'이 책에서는 폭력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 폭력으로 향하는 여섯 가지의 우회로를 일별해보고자 한다. 폭력의 문제를 삐딱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폭력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게 되면 폭력은 반드시 신비화된다.' (26페이지)

이 책은 지젝 특유의 '변증법적 화술'로 폭력에 대한 성찰을 논하고 있지만, 지젝의 어느 저작보다 명쾌하게 읽힌다. 만평과 영화 등 친근한 소재를 통한 설명과 명쾌해진 번역 덕분이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 이현우 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 1000원

조이스 캐롤 오츠와 더불어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로 꼽히는 미국 소설계의 대부, 필립 로스의 장편소설. 2008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50년대 초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대계 청년의 삶을 그렸다. 젊음의 치기, 미숙함, 성(性)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용기, 선택과 실수에 관한 이야기. 미국의 역사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탐구했던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뛰어난 통찰력과 묘사로 개인의 비극을 그리고 있다.


역사를 수놓은 발명 250가지
토머스 J. 크로웰 지음/ 박우정 옮김/ 현암사 펴냄/ 2만 5000원

고대 물감부터 20세기 인터넷까지, 인류 역사를 뒤바꾼 발명품과 발견 250가지를 소개한 책. 백과사전식 나열이 아니라, 하나의 발명이 다른 발명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과학적 맥락을 이어놓는다. 요컨대 한 권으로 읽는 물질문명사다. 바퀴의 발명과 도로 건설은 인과관계를 가진다. 알파벳 발명으로 커뮤니케이션은 확장되고 전신과 전화의 발명을 거쳐 이메일 개발로 이어진다.


제국
하종오 지음/ 문학동네 펴냄/ 7500원

중견시인 하종오의 새 시집. <반대쪽 천국> 이후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화두로 시세계를 확장해온 저자는 새 시집에서 '전 지구'로 시야를 확장시킨다. 3부 58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전 지구적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고, 전체적 사유를 통한 인간성 회복을 노래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