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사유와 노신의 '잡감문' 글쓰기 보여줘

희망
리영희 지음/ 임헌영 묶음/ 한길사 펴냄/ 2만 2000원

매주 수십, 수백 권씩 쏟아지는 책을 읽다 보면 세대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대체로 젊은 지식인의 글은 인용문이 많다.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이론의 개념을 날것으로 갖다 붙여 쓴다. 중견들은 그 이론을 제 글 안으로 품는다. 하지만 제가 읽고 배운 지식인의 눈으로 사회를 보며 마치 그것이 자기 생각인 것처럼 말만 바꿔 다시 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원로들이 쓴 글은 대체로 자신의 사유로만 밀고 간다. 이들은 제 눈을 통해서 사회를 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 글로 쓴다. 물론 이런 책은 단점도 막대해서, 때로 사실을 편향적으로 선택해 기록하는 책이 없진 않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동일한 내용에 관한 신간이라면 원로들의 것에 손이 먼저 간다.

젊은 시절부터 제 눈을 통해서 본 것만을 적고, 자신의 생각만 말하는 저자가 있었다. 지난 12월 타계한 고 리영희 선생이다. 첫 책 <전환시대의 논리>부터 마지막 책 <21세기 아침의 사색>까지 그가 쓴 모든 책에는 단 한 줄의 각주도 없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사변적인 건 더더욱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글 쓰는 작업은 자료수집이 거의 90퍼센트라고 할 수 있다." (<대화>중에서)

그는 정확한 사실을 찾고, 복잡다단한 현실에서 그 사실의 시비와 가치를 판단하고, 이를 표현할 언어가 명확해지면 글로 썼다. 세대를 뛰어넘어 그의 글이 다시 읽히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터다.

신간 <희망>은 리영희 선생의 산문을 모은 책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가 2006년 출간된 12권의 저작집 중 뛰어난 산문을 모아 다시 묶고, 서문을 썼다.

1장과 5장은 개인적인 체험과 내면적인 정신적 이력서를 다뤘다. 2~4장은 민족과 세계와 역사, 인간과 사회, 문화예술과 신앙, 교육 등 인류 보편적 쟁점들을 다뤘다. 마지막 6장은 두 권의 책(8억인과의 대화, 우상과 이성)으로 옥고를 치를 당시, 법원에 낸 상고이유서다.

리영희 선생 역시 사유의 젖줄을 기댄 스승이 있을 터, 저자는 그 계보 역시 책에 써두었다. 노신과 마르크스다. 그는 마르크스에게서 변증법적 사유의 방법을, 노신에게서 '잡감문'(雜感文: 민중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해 쉽고 구체적인 말로 쓰되, 당시 중국의 현실 때문에 역설, 해학, 완곡, 비유 등으로 뜻을 우회해서 전한 방식)의 글쓰기 방식을 배웠노라, 고백한다. 리영희 선생의 글이 '할 수 있는 모든 기법을 동원해서' 쉽게 풀어 쓴 것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수십 년 전에 쓴 책, 더군다나 사회과학에 발붙였던 그의 책은 여전히 현실성을 갖고 있다. 이것이 기쁜 한편 착잡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 사유의 깊이가 있어 그럴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인류의 큰 문제들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해 별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지음/ 아트북스 펴냄/ 1만 6000원

이 책은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와 <중세의 가을을 거닐다>를 통해 인문학을 바탕으로 독특한 그림읽기를 보여줬던 이택광 경희대 교수가 그림에 관해 쓴 세 번째 책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으로 남긴 유럽의 다리와 오페라하우스, 몽마르트르 거리, 근대화의 중심에 섰던 19세기 파리를 조명한다. 2009년 10월부터 네이버 '오늘의 미술'에 연재돼 호평을 받았던 '인상파 아틀리에'를 다듬은 책이다.


낯선 땅에 홀리다
김연수 외 10인 지음/ 마음의 숲 펴냄/ 1만 5000원

소설가 김연수, 김중혁, 박성원, 성석제, 신이현, 정미경, 함정임과 시인 나희덕, 신현림, 정끝별, 함성호 등 11인의 문인들이 펴낸 문학 여행 에세이. 김중혁의 스톡홀름, 나희덕의 시카고, 성석제의 라오스 등 문인들의 프리즘으로 비친 이국의 풍경을 맛깔스런 문장으로 풀어냈다.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노명우 지음/ 사계절 펴냄/ 1만 2000원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의 청소년판. 본래 <호모 루덴스>는 인간의 본원적 특징이 사유나 노동이 아니라 놀이라고 본 문제작이다. 고대 그리스어, 히브리어, 산스크리트어에 대한 분석과 문화사, 예술사,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 총동원된 책은 실로 일반 독자가 읽기 벅찼다. 이 책은 사계절의 주니어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발간하며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은 책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