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조릿대

조릿대 꽃
폭설의 후유증이 오래 간다. 강원도 지역이 그간 너무 건조해서 산불 걱정을 하더니 한번 내린 폭설이 많은 것을 마비시켰다. 무엇이든 넘치는 것이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정말 맞다.

쌓인 눈이 겨울숲에, 다가올 봄의 풀과 나무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겨울숲에는 침엽수가 아니고서는 회갈색의 마른 나뭇가지만 가득하지만, 그래도 숲속을 들여다보면 유일하게 초록 기운이 남겨진 잎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조릿대이다. 마른 잎은 누런 잎 그대로, 아직 초록잎은 여전히 생명의 기운을 가지고 눈 속에 슬쩍 슬쩍 드러난다.

조릿대는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대나무의 일종이다. 웬만한 산에 가면 조릿대가 자라지 않는 곳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산에서 자라는 대나무란 뜻으로 산죽이라고도 부르고 오히려 그 이름을 더 흔하게 듣기도 한다.

우리가 대나무의 표본처럼 생각하는 굵게 자라는 왕대나 죽순대 혹은 오죽 같은 것은 모두 중국이나 일본에 고향을 둔 것들이지만, 이 조릿대만큼은 이 땅에 자라는 진정한 토종 대나무이며 앞의 것들과는 아주 다른 종류이다.

조릿대는 벼과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대나무과로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조릿대의 학명은 사사 보레알리스(Sasa borealis)인데 여기서 조릿대 족속을 통칭하는 속명 사사(Sasa)는 일본 이름 세(笹)의 발음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종소명 보레알리스(borealis)는 이 나무가 북방계 인자임을 설명해 준다. 조릿대란 이름은 줄기로 조리를 만들어서 붙은 이름이다.

조릿대 잎
조릿대는 대개 1m의 높이로 엉켜 자라지만 잘 크는 곳에서는 2m를 넘기도 한다. 지름이 6mm 정도의 아주 가는 대나무이다. 길이가 한 뼘쯤 되는 길쭉한 잎은 그 끝이 뾰족하고 가장자리는 그저 밋밋해 보이지만 실제 만져보면 아주 작은 톱니가 가시처럼 느껴진다.

꽃은 대나무류가 그렇듯이 아주 드물게 핀다. 3~6송이의 꽃들이 모여 피는데 꽃을 둘러싸고 있는 포엽이 짙은 보라색이어서 전체적으로 보라색으로 느껴진다. 노란색 수술이 그 사이에 드러나고 늘어지면 꽃이 만개했음을 짐작한다. 꽃이 피고 나면 그 포기는 급속히 쇠약해진다. 조릿대의 밀알 같이 생긴 열매를 영과라고 하는데 껍질이 두껍지만 전분 자원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쓰임새로 하여 울릉도와 제주도에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고, 풍랑으로 육지의 지원도 끊겨 굶어 죽게 된 섬주민들이 이 조릿대의 열매로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한라산의 만세동산에는 그 공덕비도 세워져 있다.

정확히 육지의 조릿대와는 종류가 좀 다르긴 한데 제주도에 자라는 것은 제주조릿대, 울릉도에 자라는 것은 섬조릿대이긴 하다. 제주에서는 몸에 좋은 여러 성분이 있음을 밝혀내 조릿대로 고급 차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조릿대 족속들은 왕대처럼 길지는 않다. 꽃이 매년 피지 않고 5~6년 혹은 7년 만에 피어 꽃구경도 어렵다. 대개는 커다란 군락에서 부분적으로 꽃이 피고 식물이 죽는 일이 반복되지만 간혹 일제히 꽃을 피우기도 한다.

조릿대는 사실 군락이 땅속의 줄기로 얽혀가면서 퍼져 땅 위에서나 땅 속에서나 다른 풀들이 함께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실제 한라산에서는 기온이 올라가고 조릿대 순을 먹던 말이 사라지자 조릿대가 크게 퍼져나가 한라산의 자랑거리인 구상나무 숲을 비롯하여 많은 희귀식물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반대로 야생동물들에게는 좋은 안식처가 될 수도 있다고 하니, 좁은 시야의 우리는 참으로 자연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