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부족의 생존 위한 투쟁 등 구전 기록문학의 전설 재출간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디 브라운 지음/ 최준석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2만 원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 네 꼬마 다섯 꼬마 여섯 꼬마 인디언…."

대학 시절 과방에서 '열 꼬마 인디언 보이'(Ten Little Indian Boys)를 불렀다간 즉시 담뱃재가 날아가곤 했다. 사람들이 미국 민요나 동요쯤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노래는 서부개척기에 백인들이 도망치는 인디언 아이들을 죽이며 흥얼거린 노래였으니까.

하지만 히스토리(History)란 단어에서 드러나듯, 역사는 진실이나 정의보다 권력의 편이지 않든가. 아메리카의 희생양 인디언이 오랜 시간, '살인마 인디언 조'로 기억되는 것처럼. 이런 편견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디 브라운의 논픽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가 출간되면서부터다.

소설가 햄프턴 사이즈의 헌사를 빌어 소개한다면, 이 책을 관통하는 이념은 명백하고 급진적이다. 앵글로 아메리카인이 서부를 획득했다면 그로 인해 사라진 아파치, 네즈페르세, 유트, 샤이엔, 수우, 나바호족의 입장은 왜 이야기하지 않는가? 책은 이 문제제기에서 시작한다.

풍부한 1차 사료에 의거한 이 책은 1970년 첫 출간 이후 전 세계 500만 부 이상 팔리며 출판계 관심권에서 사라졌던 구전 기록문학의 전설이 됐다. 2002년 국내 번역, 출간됐던 이 책이 지난주 재출간됐다.

저자는 인디언 구술 기록을 토대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400년간 백인이 원주민인 인디언에 가했던 학살을 복원한다. 인디언 인터뷰와 재판기록, 조약회담 기록, 회의록의 인용, 재구성을 통해 다시 본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 즉 서부개척의 역사는 다름 아닌 '인디언 학살사'다.

책은 19 장으로 나뉘어 각 부족의 전투와 생존을 위한 투쟁들, 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 이야기들을 펼친다. 그리고 매 장은 인디언들의 죽음과 초토화된 땅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제로니모, 마누엘리토, 붉은구름, 검은주전자, 앉은소, 매부리코, 작은까마귀 등 전설적인 인디언 영웅들의 최후도 낱낱이 기록된다.

"내가 바라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일들이 이 땅에서 수없이 벌어졌다. 백인들은 우리 땅을 가로질러 갔다… 백인들이 휩쓸고 지나간 뒤에는 핏자국밖에 남은 게 없다."

오글라라 수오족의 추장 붉은구름의 말은 서부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백인의 약탈상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백인과 싸우겠다고 나선 인디언들은 사냥을 할 때 쓰던 조악한 무기를 들었고,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이유 없이 굶주린 채 죽어갔고, 또 그 땅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차별 사살됐다. 한 꼬마, 두 꼬마, 세 꼬마 인디언….

제목에 적힌 '운디드니'는 미국 사우스 다코타주 섀넌 카운티에 있는 곳이다. '부상당한 무릎'(운디드 니: Wounded Knee)에서 전쟁이 끝나자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추장인 큰발과 부족민의 주검은 추위에 얼어붙어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상의 한 종족이 사라져가던 학살의 현장. 운디드니는 그런 슬픈 기억의 장소다. 인디언 기록문학의 걸작으로 꼽힌 이 책은 미국 서부개척사의 인식을 바꾸었다.


써커스의 밤
앤젤러 카터 지음/ 조현준 옮김/ 창비 펴냄/ 1만 8000원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앤젤러 카터의 대표작. 날개 달린 공중곡예사 여인의 존재가 진실인지 거짓인지 밝히려고 서커스단에 합류한 미국 남성 신문의 이야기다. 카니발적 환상소설로 비판적 사실주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뒤섞는 작가의 솜씨가 탁월하다.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에단 와터스 지음/ 김한영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만 8000원

세계화시대는 팍스 아메리카의 또 다른 이름인 듯하다. 모든 길은 아메리카로 통하는 21세기, 이 미국식 진단과 처방은 다른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이 책은 홍콩의 거식증, 스리랑카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잔지바르의 정신분열병 등 사례를 통해 인간정신을 균일화하려는 미국의 은밀한 폭력을 보여준다.


동물권리선언
마크 베코프 지음/ 윤성호 옮김/ 미래의 창 펴냄/ 1만 2000원

르네상스 최고의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채식주의자로도 알려졌다. 그는 '훗날 인간이 동물을 먹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인간을 먹었다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 했다. 다빈치 식의 극단적 반감은 아니지만 최근 동물권리에 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에서 공장식 가축농장부터 동물실험, 동물원, 애완동물에 이르기까지 동물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태도를 꼬집는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