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풍년화

풍년화수형
조금 긴 식물탐사를 다녀왔다. 더운 나라 열대림 속을 돌아 다니다가 돌아와 보니 정말 알맞게 무르익은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산수유의 시간들은 벌써 가버리고 백목련이 눈부시다. 적절히 따뜻하고 적당히 쌀쌀하고 그리고 아주 화사한 봄. 그 봄볕이 머무는 곳에서 마냥 걸어보고 싶다.

그러고 보니 한 해가 벌써 훌쩍 한 분기를 넘어 버렸다. 조급하게 기다렸던 봄이었지만 이웃나라의 엄청났던 재난 등 큰 일에 휩쓸리다 보니 혹시 무엇인가 놓치고 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른 봄부터 시작하는 식물학자들의 일력에서 지나쳐 버린 것이 무엇일까, 문득 되돌아보게 된다.

올 봄에 챙겨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 버린 나무 중에 풍년화가 떠올랐다. 풍년화는 정원의 나무 가운데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꽃나무로 유명하다. 산수유보다 먼저 피어나니 말이다.

주변이 아직 겨울 흔적들을 남겨 놓고 있을 때 풍년화는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꽃의 ?성함을 보고 그 해의 풍흉을 첨치기도 한다.

한 해 한 해 풍흉이 얼마나 간절하면 가장 빠른 꽃의 개화를 보며성급하게 점치고 살아왔나 싶기도 하지만, 이즈음에는 정말 쌀농사 풍년이 아니라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갈까를 점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미 지나버린 풍년화의 꽃은 어땠을까.

풍년화 홍릉
풍년화는 원산지가 일본이다. 풍년화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모리스풍년화나 중국풍년화도 있어 조금씩 색감과 느낌 심지어는 향기마저도 다르지만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그냥 풍년화는 그렇다.

이 나무가 처음 알려진 것은 1930년, 지금의 국립산림과학원이 있는 청량리 홍릉수목원이고 그 때부터 매년 봄의 전령사로 자리를 잡아왔다. 사람들이 봄을 아주 간절하게 기다리는 바로 그런 시기에 꽃을 피워서이다.

이 꽃이 풍년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민감한 꽃이기 때문이다. 겨울의 끝자리에 충분히 수분이 많고, 따뜻하면 그만큼 일찍 피우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보다도 훨씬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는 도심의 공원에서 이를 감기하기가 쉬울까 싶기도 하다.

꽃이 피면 참 독특하다. 네 장의 꽃잎들은 아주 가늘고 길고 그러한 꽃들이 여러 개 자루도 없이 뭉쳐자라니 전체적으로는 예전 운동회 때 만들던 술처럼 보인다. 마치 봄의 요정들이 봄소식을 알리면서 흔들고 있듯이 말이다. 꽃색은 노란색이지만 수술암술이 들어 있는 꽃잎들의 안쪽은 붉은색이어서 매력적이다.

무릇 이 붉은 빛깔은 우리 눈에 곱게 보일 뿐 아니라 이른 봄에 일을 나선 부지런한 곤충들의 눈에 꿀샘이 있다는 걸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정원에 심기에 적절한 높이이고 많은 줄기가 올라와 포기를 이루며 그 가지마다 다닥다닥 꽃이 달린다. 꽃이 지고난 자리엔 잎이 나온다. 잎은 약간 네모지고 밑은 약간 이그러져 좌우가 같지 않으며 약간 주름이 져 있다.

이 잎은 여름내 무성하고 때론 겨울이 오고 새봄이 올 때까지 그대로 말라 줄기에 달려 있기도 한데, 더러 꽃과 지난해의 마른 잎을 함께 구경하게 되기도 한다. 나뭇잎을 달려 땀띠나 습진 부스럼 등에 바른다고 하고, 피부병이 있는 사람은 삶은 물을 목욕할 때 섞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 어떤 사연이 있든 풍년화가 한 해 한 해 풍성하여 우리 마음이 넉넉해지면 좋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