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향수와 서구에 대한 원한 해소… 정체성, 역사 재확립

다른 누군가의 세기
패트릭 스미스 지음/ 노시내 옮김/ 마티 펴냄/ 1만 5000원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란 책이 있다. 이 말은 '역사가 있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고로 이런 말은 '역사란 없다'는 가능성을 원천봉쇄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란 무엇인가?'란 질문은 아시아에 관한 어떤 상(象)을 머릿속에 심어둔 채 시작한다. 대부분 그것은 서양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는 동양으로서의 아시아다.

그곳은 과거, 현재, 미래란 근대적 시간 개념이 멈춰버린 장소, 판타지의 세계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유럽인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을 비판했지만, 동양인 스스로도 이 만들어진 동양의 신화, 오리엔탈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신간 <다른 누군가의 세기>는 이 문제 제기에서 시작한다.

일본의 돈까스와 카레는 동서양 통섭의 결과다. 근대 이후 아시아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단절의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돈까스와 카레를 먹는 유럽인은 실망한다. "이거 지금 우리가 정말 일본식으로 먹고 있는 것 맞아?"(24페이지)라고. 만들어진 아시아, 서양의 대립항으로서의 동양에 대한 전형적인 사고는 이렇게 사소한 영역에서 발생한다.

물론 그곳은 유럽이나 영미와는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예컨대 과거와 단절된 현재, 에피스테메의 공간으로 현재의 유럽이 존재한다면, 아시아에서 과거는 여전히 유효하고 때로 현재를 규정하고 결정한다.

저자가 발견한 아시아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앞서 예로 든 과거에 대한 향수. 둘째 타인 앞에서 느끼는 침잠된 무기력, 르상티망이다. 이것은 끊임없이 치고 올라와 적개심을 조장하면서 사람의 진을 빼는,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감정이다.

(필자는 이 르상티망의 개념을 '한(恨)'으로 읽었다.) 마지막으로 무력함(무력감과 무력한 현실)이다. 저자는 서구가 자랑하는 물질적 우월성 앞에서 아시아인이 자신들에게 유전적 결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런 열등감에 완전히 굴복해 버리려는 충동을 일으켰다고 분석한다.

'만들어진 동양'으로서 아시아를 보는 유럽인과 그런 동양의 이미지에 스스로 포박된 아시아인. 고로 아시아인은 분열한다. 책이 여기서 끝난다면 에드워드 사이드를 반복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을 터다.

저자는 여기서 나아가 '사이드 이후'의 아시아를 말한다. '이 분열된 아시아가 서구의 미래다'라고. 저자는 지난 세기의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체성의 문제를 극복하고 서양적인 것과 동양적인 것이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찬가지로 아시아는 탈서구 시대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오늘날 아시아는 과거에 대한 향수와 서구에 대한 원한(르상티망)을 해소하고 정체성과 역사를 재확립하고 있다고 말이다. 엄청난 속도로 팽창 중인 중국, 제 2의 경제대국 일본, 거대한 잠재성을 지닌 인도의 등장은 세계의 근본적인 변화와 트라우마 없는 새 출발을 예고한다.

'정체성이란 스스로 부과하는 것인 동시에 강자가 약자에게 강제하는 것'이란 에드워드 사이드의 통찰은 이제 이렇게 진화한다.

'아시아는 근대적인 철학적 관점을 생산하기보다는 이를 남들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의 집합체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는 그러한 관점을 뛰어넘거나 '돌파할' 방법을 제공할 수 있다.' (17페이지, 한국어판 서문)

'인터내셔널 해럴드트리뷴', '뉴오커'등에서 20년 이상 아시아를 취재한 저널리스트, 패트릭 스미스의 두 번째 책이다.

느낌의 공동체
신형철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 3000원

문학평론가 신형철 씨의 첫 산문집.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신문과 잡지 등에 발표한 산문을 모았다. 책은 총 6부로 나뉜다. 1부는 경향신문에 연재한 작가론, 2부는 '한겨레 21'에 연재한 서평, 3부는 대학신문에 연재한 산문, 4부는 '시사IN'에 연재한 시사단평, 5부는 청소년문예지<풋>에 연재한 영화와 영화 원작이 된 소설에 관한 산문이다. 6부는 권혁웅, 나희덕, 이수정 시인의 시로 시 읽기 방법론을 제시한다.

SAVOR 세이버- 당신을 구하는 붓다식 다이어트
틱낫한-릴리언 정 지음/ 김훈 옮김/ 윌북 펴냄/ 1만 3000원

불교적 관점에서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명상법으로 명망 높은 틱낫한 스님과 하버드대 영양학과 교수 릴리언 정이 효과적인 건강법을 전한다. 책은 체중 조절의 의미를 불교적 측면에서 설명한 1부, 체중 조절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안하는 2부, 이런 노력이 '전 지구'에 미치는 영향력을 언급한 3부로 구성돼있다.

눈에 보이는 귀신
리앙 지음/ 김태성 옮김/ 문학동네 펴냄/ 1만 3000원

타이완 소설가 리앙의 소설이다. 지난 30년간 작가는 정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우상파괴, 과감한 성적 묘사로 작품 발표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이 소설은 작가 스스로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된 작품으로 동, 북, 중, 남, 서 다섯 방향 다섯 편의 귀신 이야기를 통해 타이완의 운명과 여성의 운명을 환상적 기법으로 보여준다. '루청'이란 가상의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다섯 편의 귀신 이야기가 연작으로 펼쳐진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