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소설가 조경란출간, 욕망의 공간 아닌 취향의 박물관 다양한 이야기 담아

지난주 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사람의 물리적 나이와 사회적 나이에 관해 말한 적이 있다.

예컨대 올 초 나란히 책을 낸 천운영과 편혜영이 각각 나이와 등단 연도에서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지만 천 씨는 중견작가로, 편 씨는 젊은 작가로 인식되는 면이 강하다는 것.(작가들과 '도대체 왜일까?'를 말해봤지만, 술자리에서 이런 말에 결론이 날 리 없지 않은가)

소설가 조경란의 작품은 신체 나이보다 더 원숙해 보인다. 수상경력, 해외 출간 등 문운 덕도 있겠지만 아마 그녀가 쓰는 작품의 성향 때문일 게다. 일군의 작가가 '여성작가'로 묶이고, 또 다른 일군의 젊은 작가가 '포스트모던'으로 묶이던 90년대, 그녀는 기본기 탄탄한 작가로 소개됐다.

그녀는 주로 운명과 예술 같은 일반적인 주제를 밑천 삼아 소설을 쓴다. 말하기 방식도 새롭거나 파격적이기보다 정통 화법에 충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것은, 그런 생을 견디는 인물들의 과정이 치열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소설은 서사보다 관계, 사건보다 그 사이 여운에 방점을 찍는 소설이다.

소설가 조경란.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왔고 1996년 단편 '불란서 안경원'으로 등단했다. 같은 해 <식빵을 굽는 시간>으로 제 1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대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혀>가 해외 번역 출간됐다.

얼핏 화려한 것 같지만 작가로서 생활은 단출하기 그지없는 것 같았다. 작품을 위해 서울과 도쿄, 뉴욕과 파리 같은 도시들을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소설에 소재가 되는 요리를 배우고, 7평짜리 작업실로 되돌아와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작가로 등단한 후 이렇게 16년을 보냈다.

<식빵 굽는 시간>부터 <복어>에 이르기까지 소설에는 유독 음식에 관한 내용이 많다. 때문에 필자는 본지에 칼럼 '스토리 인 더 키친'을 쓰며 종종 조 씨의 작품을 뒤적이곤 했지만 한 번도 인용하지 못했다. 조경란의 작품 속 음식은 식욕이나 아득한 그리움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먹고 마시는 감각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 관계에서 빚어지는 자아의 고독과 두려움을 그린다.

지난주 출간된 조경란의 에세이 <백화점>은 그녀의 소설 속 음식들을 환기시킨다. 에세이 속 백화점은 대중 다수가 생각하는 욕망의 공간이나 허영의 시장이 아니라 취향의 박물관이다.

'보는 것의 기쁨, 보는 것의 고통, 보는 것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나는 백화점에 머물면서 감탄하고 저항하고 소외당하고 이해하게 되었다'(365페이지)는 말처럼, 작가는 백화점 각 층 마다 펼쳐진 사물과 사람을 포착한다. 백화점 건축물의 역사와 미학, 매장의 동선, 조명과 디스플레이를 관찰하며 작가는 이들의 조우와 갈등, 화해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예찬받고 싶어하는 것들. 건축이나 사물들. 그것들은 타인의 시선을 요구하며 필요로 한다. 밤의 백화점은 시선이 사라진 사물들의 서 있는 침대, 간절히 내일을 기다리고 있는 사물들의 숨으로 가득 차오른다.' (133페이지)

책의 부제처럼 그녀의 백화점에는 '그리고 사물·세계·사람'이 있다. 작가의 성장과정, 작가로서 생활, 체류했던 도시들의 백화점, 근대 소비의 역사, 우리나라 백화점 변천사와 소비사회에 대한 성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지하 1층 지상 10층의 '글로 지은 백화점'에 담겨 있다. 서늘한 시선, 아름다운 문체, 깊은 여운. 조경란의 소설 미학이 산문에서도 오롯이 드러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