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큰개불알풀

봄이 무르익은 양지 바른 풀밭에 푸른색 꽃잎을 가진 작은 꽃들이 가득하다. 꽃도 식물체도 작고 귀엽다. 바닥에 납작 퍼져 자라지만 큰 무리를 이루고 있다.

봄의 풀밭을 눈여겨 보는 이라면 누구나의 눈에 들어오는 꽃이다. 보랏빛을 약간 섞은 듯한 네 장의 남색 꽃들이 오글오글 주름진 잎새들 위로 은하수에 별이 박히듯 피어있다. 사실 이 꽃이 보인 지는 한 달이 되어가는 듯 싶은데 여전히 싱그럽다. 봄 내내 볼 수 있는 큰개불알풀의 꽃이다.

세상에 이렇게 앙증맞은 꽃에게 그런 이름이 붙었나 싶다.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있지만 이름에 논란이 많은 개불알꽃은 아래 꽃잎의 모양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젠 '복주머니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큰개불알풀은 열매의 모양이 아주 작은 두 개의 방울처럼 생겨 다소 민망한 이름이 붙어 있다. 이 식물 역시 '봄까치꽃'이라는 별명을 가지고는 있지만 표준 이름은 여전하다. 그냥 개불알꽃에 비해 꽃이 큰 편이어서 큰개불알풀이 되었다.

영어 이름은 버드 아이(Bird's eye), 즉 '새의 눈'이다. 풀밭에 점점이 박혀 피어난 꽃들이 푸른 창공을 나는 새의 눈처럼 보였나 보다, 스피드웰(speedwel)이란 영어 이름도 있다.

빨리 잘 자란다는 뜻일 텐데, 이 풀의 생태를 살펴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여리고 깜찍하게 느껴지는 이 풀의 영어나 우리 이름이 좀 생뚱맞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형태나 생태를 잘 반영한 이름일 수 있다.

큰개불알꽃은 현삼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풀이다. 그리고 꽃이 더 작고 자줏빛이 나는 개불알꽃은 자생식물이지만 큰개불알꽃은 유럽, 서아시아, 아프리카 등 폭넓은 원산지를 가지고 있는 귀화식물이다.

일찍이 귀화하여 처음 많이 퍼져나간 남부지방은 물론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길가 풀밭에 있지만 논둑과 밭둑에서 자라기도 하고 밭에 들어가면 예쁜 야생화에서 골치 아픈 잡초로 변신을 한다.

조밀조밀 자라고 있는 큰개불알꽃이 얼마큼 많은가 조사한 결과를 보니 사방 1㎡에 평균 72포기가 자란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만들어 내는 씨앗의 숫자가 3만~4만 개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풀은 이렇게 씨앗을 집중적으로 만들어 마치 빗발치듯 쏟아낸다고 하여 종자우(種子雨; seed rain)라 하는데 자그마치 넉 달 동안 지속한다니 정말 대단한 생명력이다.

이렇게 떨어진 씨앗은 주변에 떨어지지만 한 알은 열매 안쪽에 단단히 붙어있다가 열매가 바람, 비, 혹은 동물들에 의해 이동할 때 같이 퍼져나간다. 일단 흙 속에 들어간 씨앗은 길게는 30년씩의 수명을 가지고 버티며 언제든 싹이 틀 준비를 한다. 가을에 싹을 올려 겨울을 나고 그리고 봄이 오면 꽃피우기를 계속한다.

처음에 이 풀의 예쁜 모습에 눈길을 주었다가 이 봄 이토록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조용히 피고지고 퍼져가는 것을 보니 문득 섬뜩한 느낌도 든다. 자연이든, 사람 사는 사회이든 모두 그렇게 여러 모습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게 삶인가 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