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청가시덩굴

다 가버린 줄 알았던 봄은 빗줄기가 그치니 다시 곁에 다가서 있고, 햇살이 반짝 곱다 싶더니 다시 훅 하니 더운 기운이 느껴진다. 기온의 기복이 너무 커서 적응이 어렵다. 비도 그렇다.

슬쩍슬쩍 살짝살짝 소리없이 내리던 봄비와는 달리 주룩주룩 길게도 내려 장마인가 생각도 했다. 기온의 변화부터 여기 저기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들이 예사롭지 않아 덜컥 겁이 난다.

우리들이 함부로 지내온 탓에 조화롭던 지구 자연의 질서에 크게 변화가 온 것 같다. 훨씬 예민하고 섬세한 식물들은 이러한 변화에 얼마나 당황하고 있을까.

화려했던 봄꽃들은 이미 땅 위에서 사라지고 풍성한 초록과 무성하게 커나간 여름꽃이 아직은 뜸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작은 꽃들을 모아 꽃차례를 만들며 이런 저런 잎새들 사이에서 열심히 피고 있는, 한 눈에 발길을 멈추도록 만들지는 않았어도 이 나무, 저 나무, 이 풀, 저 풀들이 들어온다.

지금이 꽃이 뜸한 계절이라고 생각한 것은 내 발길과 눈길이 뜸했던 탓임을 알았다. 그 중에서도 그동안 놓쳐버렸던 덩굴식물들의 꽃들이 많다. 오미자나 머루꽃은 놓쳤으나 머루꽃도 한창이고 새모래덩굴도 제법 풍성한 꽃잔치 중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정말 예쁘고 곱게 청미래덩굴이 꽃을 한창 피우고 있다.

청미래덩굴은 백합과에 속하는 낙엽 지는 나무이며 덩굴식물이다. 그리고 아주 크게 자라지 않아 관목에 포함시킨다. 백합을 비롯하여 원추리 등등 아름다운 꽃들이 많기로 유명한 백합과에는 대부분 풀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드물게 청가시덩굴은 나무이다.

사실 청가시덩굴은 숲에 가면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식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개성 있고 선명하게 인식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한집안 식물인 청미래덩굴 때문인 듯하다.

명감나무, 망개나무라고도 불리우는 빨간 열매를 달고 있는 청미래덩굴과 아주 비슷하여 청가시덩굴을 보았어도 청미래덩굴이려니 하고 지나쳤기 쉽다.

사실 잎도 꽃도 아주 비슷하다. 그래도 한번 두 식물의 차이점을 인식하고 나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둥글게 휘어지는 나란히 맥을 가지는 것은 같지만 잎이 두텁고 반질거리며 동그란 청미래덩굴에 비해 청가시덩굴은 잎끝이 뾰족하고 잎이 얇다. 열매를 보면 가장 확실하게 구분이 가는데 청미래덩굴은 빨간 열매를 가졌고 청가시덩굴은 익으면 검은빛에 가깝게 익는다.

그 청가시덩굴의 꽃들이 지금 한창이다. 그런데 작은 꽃들이 공처럼 둥글게 모여 있는 모습을 가까이 눈여겨 보면 나무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르게 달리는 암수딴그루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니 개체들은 많은데 왜 열매 구경이 드물었나 생각했던 궁금증이 풀린다. 숫나무들이 많았던 탓이다.

녹색의 줄기엔 가시가 많고 잎자루 중간쯤에 한 쌍의 덩굴손이 나와 다른 물체들을 감고 올라간다. 그간 눈 여겨 본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사실 꽃도 잎도 열매도 볼 수 있는 식물이라 덩굴식물로 조경소재로 활용하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양지와 음지에서 모두 잘 자라고 번식력이 강하니 키우기도 좋다.

어린 순과 잎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한방에서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관절 통증이 심하고 잘 움직이기 어려운 증상에 처방한다는 기록이 있다.

새록새록 아직도 들여다 보면 볼수록 나무나 풀은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그래서 자연 속에서의 식물공부를 멈출 수 없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