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 탄생 100주년 맞아 수제자가 정통 해설서 펴내

아렌트 읽기
엘리자베스 영-브루엘 지음/ 서유경 옮김/ 산책자 펴냄/ 1만 5000원

'평범성에서 대담성으로'.
2005년 뉴욕타임스 주말 리뷰판 1면은 1961년 예루살렘 법정에서 열렸던 나치주의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사진과 사담 후세인 재판 사진을 나란히 실으며 이런 제목을 붙였다.

한나 아렌트의 정치철학을 집대성한 용어 '악의 평범성'을 인용한 이 제목은, 그러나 엘레지베스 영-브루엘에 따르면 '(한나 아렌트를)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현대정치의 최대 난제, 전체주의를 통찰한 위대한 사상가다. 그러나 앞선 예에서 보듯 한 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난해한 철학으로 아렌트의 사상은 다양한 수식어로 재단됐다.

신간 '아렌트 읽기'는 그녀를 사사한 수제자 엘리자베스 영-브루엘이 지은 책이다. 한나 아렌트에 관한 기념비적 저서로 꼽히는 평전 '한나 아렌트 : 세계 사랑을 위하여'를 1982년 집필한 후 정신분석학자의 다른 길을 갔던 저자는 아렌트 탄생 100년(2006년)을 맞아 다시 정통 '아렌트 해설서'를 펴냈다.

책은 그녀의 학문적 여정을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해 그 대표작을 읽는 것으로 구성된다. 여정의 출발점은 '전체주의의 기원'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철학도였던 아렌트가 1930년대 유럽의 정치적 혼란 속에 현실정치에 눈을 뜨게 되고, 유대인으로서의 개인적 경험과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아렌트의 정의에 따르면 전체주의란 '이데올로기와 테러에 기초한 신종 통치 형태'다. 개인 사이 모든 대화 장치가 분쇄된 시민은 원자화되고 무기력하게 체제에 순응한다.

이렇게 순응한 개인은 사유능력을 잃고 자기 행동의 도덕성을 따져보지 못하게 되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같은 '생각 없는' '평범한 악'이 탄생하기에 이른다.

아렌트 사상의 중기에 해당하는 1950~60년대에 쓰인 '인간의 조건'과 '혁명론'은 이 시기 사상을 대표하는 저서다. 저자는 '인간의 조건'을 '공적인 것들을 사유하고 평가하는 입문서'라고 소개한다. 이 책은 전체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인간의 정치행위론을 구축하는 책이다.

아렌트는 정치행위의 본모습을 그리스 폴리스 정치에서 찾는다. 요컨대 서로 소통하고 공적인 행복을 향유하는 것이 정치의 본모습이며 이 정치행위가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아렌트는 다시 철학으로 회귀한다. 이 말기의 대표 저서는 사유의 정치적 의미를 밝힌 유작 <정신의 삶>이다. 아렌트는 정치적 사유의 조건을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확장된 심리(상식)'이라고 말한다.

칸트의 '공통감각'에서 발전된 이 '확장된 심리'는 인간이 소통과 정치를 하는 근간이 될 뿐 아니라 아렌트가 강조한 '용서'와 '약속'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유의 조건이다.

'호기심을 가져보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철학하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멈추고 사유하는 것이며, 중지하고 성찰하는 것이고, 당신에게 감명을 받을 수 있고 놀랄 수 있는 각성도를 허용하는 것이며, 너무 많은 전제 조건이나 사전 판단 없이 반응하는 것이다.' (38~39페이지, 서론)

이 책은 20세기 사유의 렌즈를 통한 21세기 바라보기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하고 있다.

모든 가능성의 거리
박정대 지음/ 문예중앙 펴냄/ 9000원

국내 시단에서 낭만주의적 정신을 가장 순도 높게 구현하고 있는 박정대 시인의 신작 시집. 양조위에서 짐 자무시까지, 코헨부터 말라르메까지를 종횡으로 오가며 한 시대의 정신적 풍경을 찍어낸다. '모든 가능성'(1부), '모든 거리'(2부), '모든 가능성의 거리'(3부)로 구성된 시집은 청춘과 고독, 사랑의 세 이미지를 서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손철주 지음/ 현암사 펴냄/ 1만 5000원

스테디셀러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 손철주 씨의 그림 에세이. 해박한 식견과 발품, 탁월한 해석과 문체로 알려진 저자는 우리 옛 그림 68편을 사계절로 나눠 감상을 전한다.

매화 핀 봄날 그림(전기의 '매화초옥도')에서 시작해 절기가 순환해 다시 봄을 기다려 매화를 찾아나서는 그림(작가 미상, '파교 건너 매화 찾기')로 끝맺는 이 책은 각 그림에 2페이지 씩 해제의 글을 붙여 읽는 맛을 더했다.

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한겨레출판사 펴냄/ 1만 2000원

중견 작가 김인숙의 신작 장편소설. 이 책에서 작가는 한 여자의 미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과 그 상황 속에서 만난 진실, 그 후에 만나게 되는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진의 남편 유진, 섬의 드라이버 이야나, 이야나의 친구 만, 만의 의붓엄마, 이야나의 약혼녀 수니, 진의 집에서 일한 서번트 여자아이와 그 여자아이를 사랑한 남자아이. 7년 전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각각의 사연들이 지진과 해일 속에서 하나둘씩 퍼즐처럼 맞춰진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