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장르 이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러시아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 하나 '절망' 번역 출간

엄청난 다작으로 이름을 남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단 한 권의 책으로 문학사에 기록되는 작가도 있다. 전자에 해당하는 작가가 괴테, 도스토옙스키, 발자크쯤 된다면, 후자에 해당하는 작가는 보들레르, 베케트, 생텍쥐페리 정도 되겠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20세기 두 언어권(러시아, 미국) 문학사에 기록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단연 후자에 해당하는 작가다. '롤리타 콤플렉스'로 알려진 롤리타는 그의 소설 제목이자 소설의 주인공이고, 그는 이 작품의 성공을 통해 문학사에 기록된다.

물론 성공의 시작은 문학성보다 선정성에 있었다. 삼십대 후반의 아저씨가 열두살 소녀를 사랑해 그 엄마와 결혼하고 소녀와 호텔을 떠돈다는 이야기는 이 책에 출간된 1950년대가 아니라 지금에서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한 발상이니까. 당시 유럽과 미국 사회는 '판매 금지' 조치로 화답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소아성애자의 포르노그래피'로 기대하고 집어들었다간 곧 책장을 덮게 된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세 단계로 치고 내려오면서, 세 번째는 이에 다다르는 여정. 롤. 리. 타.")

러시아 태생이지만, 나보코프는 영어로 이 소설을 썼는데, 단 몇 줄의 도입부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소설은 선정성, 유희성, 구조적 치밀함과 언어적 유희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으로 짜여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899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1977년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한 소설가 겸 시인 겸 문학평론가이자 나비에 엄청난 애정을 보인 곤충학자였다.

러시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방면에 걸쳐 최상의 교육을 받으며 17살에 자비로 <시집>을 발간했고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1919년 서유럽으로 망명했다. 192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약 20년간 독일·프랑스 등지에 살면서 러시아어와 영어로 소설과 시를 썼다.

그의 소설은 크게 러시아 시대와 유럽 시대, 미국 시대로 나뉜다. 1940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로 그는 뛰어난 영어 작품들을 발표한다. 1955년 출간된 <롤리타>는 그 중 하나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은 3주 만에 10만 부가 팔렸고, 스탠리 큐브릭에 의해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롤리타 콤플렉스'란 용어가 만들어졌다.

최근 그의 작품 <절망>이 번역 출간됐다. 작가의 여섯 번째 소설이자 러시아어로 쓴 가장 뛰어난 소설 중 하나다. 1931년 독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단초로 쓴 이 작품은 사건이 일어난 이듬해 집필돼 1936년 출간됐다.

'나는 <절망>에서 나의 다른 책들에서처럼 어떠한 사회적 논평도 제시하지 않고, 어떠한 교훈도 입에 담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지도 않고, 인류에게 올바른 출구를 제시하지도 않는다. (…) 평범한 독자라면 단순한 구성과 재미있는 이야기가 그저 반가울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나보코프의 문학적 지향점을 압축하고 있다.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 그저 그것만으로도 좋지 아니한가.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