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낯익은 세상' 출간쓰레기장 '꽃섬' 배경 소비지향적 현대문명의 이면 포착중국 리장과 제주도서 집필하면 만년문학의 첫 장 열어

소설가 황석영 씨가 신작 장편소설 <낯익은 세상>을 냈다. 쓰레기장 '꽃섬'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14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소비지향적인 현대문명의 이면을 포착하고 있다.

원고지 700매, 짧은 이야기는 작가의 어떤 작품보다 속도감 있게 읽힌다. 그 짧은 이야기의 줄거리와 의미를 소개하는 언론사의 기사가 다 제각각이다.

짧지만 가볍지 않은 작품이란 뜻이다. 작가 등단 이후 첫 전작 소설이다. 만년문학의 장을 연 첫 작품이다. 작가가 말했다.

"만년문학의 시작에서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문턱을 넘은 느낌입니다."

꽃섬의 남비콰라족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말을 첫 머리에 쓴 여행기를 냈다. '문명 대 야만'으로 틀 지워진 당시 서구의 민족주의를 깨부수기 위해 그는 문명 이전의 인간을 찾아 아마존강 유역의 4개 원주민 부족 속으로 들어간다. 문명 없는 그곳은 에덴동산이던가?

레비스트로스는 문자가 없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남비콰라족을 관찰하며 문명, 구체적으로 문자를 전파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문자를 배우며 더 이상 과거의 사실을 기억하지 않고, 부족사회에는 차이 체계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차이는 차별로 이어진다. 문명의 도래와 함께 갈등과 반목의 역사가 시작된다. 서구에 의해 파괴된 열대의 삶, 이 문명화의 과정을 그는 <슬픈 열대>라고 썼다.

그러나 모든 체계 안에서 해체의 가능성을 말했던 자크 데리다는 슬픈 열대, 이미 그 안에 차이 체계가 있다고 못 박는다. 다만 문자로 표현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이다. 요컨대 우리가 흔히 '자연'이라 부르는 완벽한 세계 안에도 선과 악은 공존하고 있다. 이미 에덴동산 안에 선악과가 있었던 것처럼.

기자 간담회가 있던 날 저녁, 얼큰하게 취한 필자가 생뚱맞게 데리다 얘기를 꺼냈을 때, 작가가 불콰해진 얼굴로 말을 받았다.

"그렇죠. 아마존 부족들에게 이미 선과 악이 동시에 있는 거죠."
"그건 꽃섬도 마찬가지고요."

황석영의 신작 <낯익은 세상>은 자본주의 욕망의 집결소, 쓰레기장을 삶터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곳을 문명의 끝으로 보지만, 문명의 시작인 슬픈 열대가 그러한 것처럼 그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작가가 이곳을 '꽃섬'이라 부르는 이유다.

"우리가 살면서 소비하고, 버리고, 잊어버린 얘기를 좀 쓰고 싶다 했더니 누군가가 '쓰레기장 얘기가 어떻습니까?' 그래요. 우리가 근대화 기간 살아왔던 욕망의 잔재들이 묻어 있는 곳이니까요. 그 말 듣고 '카프카가 난지도를 쓴다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열네 살 소년 딱부리는 엄마와 함께 세상 끝, 사람들이 쓰고 버리는 모든 물건들이 흉물스럽게 산처럼 쌓인 쓰레기촌인 꽃섬으로 밀려난다. 소년의 눈에 비친 꽃섬의 풍경은 기괴하다.

'쓰레기들은 더럽고 볼썽사나워 보였지만 검고 희고 푸르고 노랗고 알록달록 반짝이기도 하고 매끈거리기도 하며 네모나고 각지고 둥글고 길쭉하고 흐느적거리고 뻣뻣하고 처박히고 솟아나고 굴러내리고 매캐하고 비릿하고 숨이 막히고 코가 쌔하고 구역질 나고 무엇보다도 낯설다.' (41~42페이지)

이곳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악다구니를 쓴다. 매일 새벽 트럭이 도착해 도시의 쓰레기들을 쏟아내면, 사람들은 그 속에서 돈 될 것들을 뒤진다. 작가는 쓰레기장이란 낯선 공간을 통해 소비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한편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이 욕망과 소비와 폐기를 반복하는 공간에서 소년은 악취와 빈곤에 매몰되지 않는다.

"인류학 전공한 어떤 분이 100년쯤 뒤에 쓰레기장을 발굴하면 그때 그 무렵 사람들의 일상, 삶의 표정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트로이의 유적을 발굴하듯이 쓰레기장의 표층을 보면 거기에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상이 나온다는 말이죠. 여러분은 쓰레기장이 '일상과 다른 생활'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쓰레기장은 현재 우리가 세계 일류들이 자본주의 문명을 만들면서 잘못했던 것들, 잘못 이룬 세상의 모순이 집약된 곳이죠."

시간이 멈춘 곳에서

작가는 이 작품을 중국의 고적한 도시, 리장에서 썼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곳을 찾아달라"는 그의 부탁에 출판사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가 추천한 곳이다. 작가는 "작년 10월과 11월 이곳에서 작품을 썼고, 올해 초 제주도로 옮겨 완성했다"고 말했다.

해발 2400m,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와 국경을 맞댄 그곳은 본래 중국의 소수민족 나시족의 삶터로 1300년대 고성이 보존된 도시였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이곳은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와 기념품을 전시하는 관광도시가 됐다.

작가와 기자단이 그곳을 방문했던 2011년, 리장의 고성은 중국산 기념품을 파는 거대 상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관광객들은 제 나름의 '동양의 베니스'를 머릿속에 그리며 사진을 찍고 기념품을 사고 커피를 마셨다. 이들을 상대하는 리장의 장사꾼들은 베 짜는 나시족 여인들을 앞세워 대량 생산된 공장제 머플러를 팔았다.

오리엔탈리즘의 환상을 쫓는 유럽인과 제국을 그리워하는 중국인과 '멈춘 듯한 시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들과 소수민족 나시족은 1300년대 아득한 시간을 떠올리며 2011년의 한 때를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다고 믿고 싶은' 사실만을 기억할 것이므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얼굴이 까만 나시족 사람들과 그들의 뒤뚱거리는 춤사위와 반질거리는 고성의 벽돌 길만이 남을 것이다.

취재 3일째 되던 밤, 이곳에서 한국인이 나이트클럽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연과 문명, 과거와 현재, 허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것은 비단 리장뿐이 아니다.

<낯익은 세상>에서 그것은 꽃섬(현실)과 도깨비의 세계(허구)로 그려진다. 마을 한편의 '빼빼엄마'는 당집 할머니의 혼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왔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는 버려진 개들을 돌보며 정령, 도깨비들과 소통한다. 이 허상이 그녀와 꽃섬 아이들을 버티게 한다.

딱부리는 아이들의 비밀공간인 '본부'와 빼빼 엄마집을 드나들며 어른들의 세계와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이 이중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인간과 정령, 문명과 자연의 경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근원과 본질에 대한 질문을 줄기차게 던진다.

"이른바 후반기 문학에서 내가 세운 여러 전략 중에 하나는 세계 보편적 현실을 우리 형식에 담겠다는 것이죠. 이 전략을 <손님>, <심청>, <바리데기>까지 일관되게 해오면서 리얼리즘 소설이 갖는 과학적 습성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도깨비의 세계는 그 연장선상에 놓인다. 오래 전부터 함께 해온 동양적 낯익음과 자본주의 산업화가 만든 쓰레기 세상이 공존하는 장소가 꽃섬인 셈이다.

하반기 문학에서 만년 문학으로 넘어가는 이번 작품을 쓰며 작가는 '추상화 기법'을 더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한 "카프카가 난지도를 썼다면…"이란 가정은 이런 맥락에서 풀이된다.

"카프카는 현실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지 않고 사물이나 사건의 배치를 엉뚱하게 하죠. 그 배치로 저절로 이야기가 추상화되고요. 그렇게 그린 추상적 세계가 인간이 겪는 일상을 반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런 작품을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죠."

14세 소년의 눈을 통해 쓰레기장을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어린이를 화자로 등장시켜서 객관적, 보편적으로 장면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는 뭐든지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잖아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6·25를 겪었는데, 그땐 전쟁도 재미있었다고.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좀 비켜나 있으니까. 그리고 늘 열려있기 때문에 쉽게 화해하고 즐겁게 일상을 보냅니다. 어른이 보내는 일상과 달라요. 아이를 화자로 등장시켜서 추상화하는 데 도움이 됐죠."

말년의 문학에 관하여

'예술가들이 경력의 말년에 이르러 얻게 되는 독특한 특징의 인식과 형식이 과연 존재할까? 우리는 몇몇 말년의 작품에서 공인된 연륜과 지혜를 만나는데, 이런 작품들은 특별한 성숙의 기운, 평범한 현실이 기적적으로 변용된 화해와 평온함의 기운을 드러낸다.

우리 모두는 말년의 작품이 어떻게 평생에 걸친 미적 노력을 완성하는지, 그 예를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중에서)

대다수 작가들이 말년에 이르면 사소하면서도 근원적인 작품을 쓰는 데 몰두한다. 황석영 역시 이런 '근원적인 작품 쓰기'를 고민하고 있었다.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읽었는데, 힘을 쫙 뺐어. 뉴욕 빈민가에서 자기가 겪은 일을 추억 속에서 쓴 거야. 근사하더라고. 내 만년문학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2~3년 전부터."

작가는 몇 년 전 만났던 귄터그라스, 마르케스와의 일화를 말하며 두 작가를 "어린아이 같은 카리스마"라고 소개했다. 유쾌한 어린아이와도 같던 이 작가들은 만년문학 시기에 사소하면서도 뒤늦게야 재발견되는 일화를 통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앞으로 쓰게 될 황석영의 작품도 이런 범주로 묶을 수 있을까? 이른바 '하반기 문학 시기'로 불리는 98년 이후 작가는 출간하는 소설마다 작가의 말에 작품 형식과 자신의 문학적 지향점을 밝혀두고 있다. 그 결과물이 어떠하듯, 이제 황석영의 작품 의도는 어린아이 같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만년문학은 치매의 문학이다, 라는 그럴듯한 소리를 얻어듣게 되었다. (…) 이를테면 치매는 현재에서 가까운 기억들을 지워가면서 지나간 옛날이나 또는 기억해야 될 것들만을 간추려서 되새기고 재조합하는 과정일 것이다. (…) 이맘때에의 내 문학은 치열한 전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쓸어버린 뒤의 폐허에 남아 있는 연민을 위한 것이 되리라.' (232페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98년 이후 거의 한 해 한 편씩 장편을 발표했는데, 혹시 매너리즘이 나한테 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 자기 변모를 하지 않으면 당분간 글을 못 쓰겠다 하는 초조함이 있었어요. 말하자면 다른 세계 쪽으로 자기변모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년문학에서 자기 근원으로 돌아간다는 것, 그 문턱을 넘은 느낌입니다."

내년이면 등단 50년을 맞는다는 작가는 자신의 문학관을 정리는 새 장편을 구상 중이다. 19세기 조선조 말, 여러 풍랑을 겪은 이야기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제목도 '이야기꾼'이라고 미리 정해두었다.

"황석영 아바타를 하나 만들어서 이야기꾼 이야기를 쓰려고요. 소설로 쓰는 작가론이죠. 제가 겪은 인생과 소설의 허구를 섞으면서 이야기꾼의 일생을 쓰려고 해요. 문학 50년을 새롭게 하려고 합니다. 만년문학을 시작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습니다."



리장=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