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유진, 강진나란히 첫 장편ㆍ소설집 출간 약한 서사와 파멸 이미지 공통점

소설가 김유진과(왼쪽), 강진
지난주 소설가 김유진, 강진 씨가 첫 장편소설, 첫 소설집을 냈다. 두 사람은 각각 2004년과 2007년 문학동네, 현대문학 등 걸출한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이력 이외에는 닮은 점이 거의 없을 정도. 예컨대 '80년대 생(生)'인 김유진 작가는 한유주, 김태용 등 일군의 작가들과 2000년대 젊은 문학의 한 흐름을 대표한다. 이 흐름은 이른바 '서사 파괴의 소설'이다.

80년대 학번인 강진 작가는 상처와 죽음의 이미지를 선명한 묘사로 드러낸다. 김유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공감대나 공통 감각 없이 홀로 존재하는 사물과 같다.

강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서로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김유진은 그로테스크한 풍경 묘사, 즉 시각의 언어화를 통해 비평가들의 눈에 띄었다.

강진은 후각과 촉각에 의지해 삶과 죽음을 표현한 '흰 바퀴벌레 이야기'로 호평을 받았다. 두 사람의 소설을 나란히 읽다 보면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른바 세대론으로 묶여있는가를 실감하게 된다. 두 권의 책을 들고 작가를 만났다.

김유진, 숨은 밤

김유진 씨는 재작년 소설집 <늑대의 문장>으로 주목받은 젊은 소설가다. 그의 초기 작품은 소설의 중심축인 캐릭터와 서사를 배제하고 있다. 첫 소설집의 표제작 '늑대의 문장'을 포함한 단편들은 이미지 묘사만으로 소설이 힘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실험작인 셈이다. 툭툭 던지는 강렬한 문장은 몽환적 분위기를 보여준다.

지난 주 출간한 첫 장편소설 <숨은 밤>은 이 연장선이다. 다만 장편인 만큼 서사성이 강해졌다. "단편집에 비해 훨씬 읽기 편했다"는 감상평에 작가는 "다행이다"는 반응을 보인다. "인터넷 연재로 쓴 작품이라 문장이 짧아졌다"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장편은 목적이 뚜렷했어요. 커다란 벽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자는 거죠. 제가 단편에서 써왔던 이미지들을 아주 크게 펼쳐서 큰 스케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 희미한 아이들이 있다. 한 아이는 어느 날 헛간의 썩은 볏짚 사이에서 발견된다. 소년의 이름은 '기(基)'. 다른 아이는 트럭을 끌고 장사를 하러 다니는 아버지가 여관에 맡겨두었다.

소녀는 기가 일하는 여관의 404호에 산다. 여름 휴양지로 반짝 성수기를 이루는 이 마을에서 거의 유일한 이방인인 소년과 소녀는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첫사랑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제 마음 안에 왕국이 만들어졌다 무너지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장편 <숨은 밤>은 이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건조하고 감각적 문체로 그려낸 작품이다.

"제목은 '빚 뒤에 숨은 어둠'이란 뜻이에요. 모닥불에 가장 근접한 곳이 어둡잖아요. 회화에서도 가장 밝은 부분을 그릴 때 역광을 넣고요. 이 소설을 쓸 때는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랑의 전조를 쓰고 싶었죠. 나타났다 사라지는 감정, 태어나기 전에도 사라지는 감정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강진, 너는 나의 꽃

강진의 단편은 최근 국내 문학시장에서 자주 회자되는 경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소설은 중간소설(순소설과 대중소설의 중간적 성격 소설), 순문학의 장르문학 요소 차용, 서사 파괴 등등의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오히려 90년대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이를테면 관계에 대한 집요한 관찰, 이미지의 감각적 묘사, 상처받은 내면의 풍경 등이 작가의 이야기 밑천이다.

그는 첫 소설집 <너는, 나의 꽃>은 등단 후 지금까지 발표한 단편집 9편을 묶었다. 표제작을 비롯해 등단작 '건조주의보' 등 9편 모두 죽음과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그 죽음은 삶을 완성해 가는 관문인데, 그 과정에서 작가는 특유의 환상적 시선으로 인생에 숨겨진 사랑과 의미를 찾아내 보인다.

"첫 소설집은 작가의 모습이 많이 반영된다고 하잖아요. 책을 내고 나서 이제 이런 관심사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오늘 동료 작가한테 문자 보냈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구라' 칠 수 있겠어'라고."

표제작 '너는, 나의 꽃'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떠났던 옛 연인을 간호하는 남자다. 말기 암에 걸려 피폐해진 연인의 모습에서 예전 남자를 사로잡았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그에게 꽃이었다. 여자는 단말마의 고통 속에서 안락사를 원하고 남자는 그 소망을 외면하지 못한다.

풍경과 상처

오랫동안 글로만 보아왔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났다. 얼핏 '두 작가의 소설에서 교집합이 있을까?' 싶었지만, 인터뷰를 이어가며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작가의 소설의 공통점을 생각해봤는데, 대략 두 가지 정도 떠올랐어요, 하나는 서사성이 약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파멸하는 이미지를 자주 그린다는 거죠.

강진) "제 소설이 그림이랑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저와 많이 다르지만, 김유진 작가의 <늑대의 문장>은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많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읽었어요."

책 나오니까 소감이 어떤가요?

강진) "단편을 묶고 보니까 전부 죽음이나 상처에 대해서 말하고 있더라고요. 제 주변사람들은 저를 밝은 이미지로 기억하던데, 소설 읽고 다른 인상을 줄까봐 염려스러운 면이 있었죠."

김유진)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저는 타인 시선을 그렇게 의식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책을 내고 독자나 평론가들의 반응을 보고 '아, 그렇게 읽힐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재작년 단편집을 내고 나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이 있었거든요. '적당한 공감대를 만들자'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기준은 저에요."

김유진 작가는 사물, 풍경에 대해서 많이 묘사해요. 인물도 사물처럼 묘사하는 느낌이 들죠. 그래서 소설에서 작가 자의식이 개입된다고 해도 독자가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반면에 강진 작가는 풍경을 묘사해도 풍경 자체가 아니라 풍경을 통해서 사람이 상처받은 이야기를 쓰죠.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해서 써요. 독자가 '소설 주인공=작가'라고 착각할 여지가 많은 거죠. 두 분 올해 계획은 어떤가요?

김유진) "하반기에 두 번째 소설집을 낼 계획이에요. 소설을 쓸 때 항상 소소한 목적이 있는데, 최근에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는 거예요. 나이가 드니까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애인과 무수한 관계의 부침을 통해서 자신을 재고하게 되잖아요. 그런 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쓰고 싶어요."

강진) "저는 이제까지 관계에 대해서 썼고, 그 관계에서 발화하는 감정을 썼어요. 전 김유진 작가보다 오래 살았고 또 결혼을 했으니까 관계에 대해서 많이 천착했을 수도 있겠네요. 지난 겨울부터 장편소설을 쓰고 있어요. 구체관절인형 공방을 통해서 혼자 살아가는 현대 여성상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